경북 구미 소재 SK실트론 공장 전경 |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최태원 SK 회장 지분취득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SK실트론의 40년 연혁을 보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사를 엿볼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동부를 통해 태동된 실트론은 LG로 인수된 뒤 다시 SK로 넘어오기까지 반도체 시장 도전을 둘러싼 국내 기업들의 도전과 실패, 주도권 변천을 보여준다.
1983년 김준기 당시 동부그룹 회장은 전자사업에 대한 꿈을 키우던 와중 미국 농화학기업인 몬산토와 합작, 코실이란 반도체 웨이퍼(회로기판) 제조업체를 설립했는데 이게 실트론의 뿌리다. 이후 1989년 동부전자통신으로 상호를 바꾼 뒤, 1990년엔 경영권이 포함된 51%의 지분을 LG(당시 럭키소재)에 매각했지만 49%의 잔여 지분은 보유함으로써 반도체와의 연은 이어간다.
이후 1997년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이른바 ‘반도체 빅딜’에 의해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인수된다. 이로써 반도체 사업을 접게 된 LG는 실트론 사업은 지속 영위했는데, 동부는 2007년 제철 사업 자금 마련 등의 목적으로 실트론 지분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변양호씨의 보고펀드(29.4%)와 KTB프라이빗에쿼티(PE·19.6%)에 매각한다. 동부가 빠지자 LG는 2011년 실트론 사명을 LG실트론으로 변경한다. 이듬해인 2012년 SK그룹은 하이닉스(전 현대전자)를 인수함으로써 반도체 사업에 본격 뛰어들게 된다.
보고펀드·KTB PE는 2010년대에 들어서자 투자금 회수에 본격 시동을 건다. 이를 위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지만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면서 시도가 여러차례 무산됐고 보고펀드는 결국 상환만기 미준수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처해지면서 보유 지분을 모두 우리은행 채권단에 넘겨야했다. KTB PE도 몇 차례 만기연장으로 가까스로 디폴트는 면했지만 매수 주체가 조기에 나타나주길 바라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상황이다.
그러다 2015년 일본 금융회사인 오릭스가 채권 보유 지분(29.4 %) 인수에 문을 두드렸지만 3년 이내 IPO 실시, 이사진 파견 등 다소 까다로운 조건과 무리한 자금조달계획을 고집하면서 이 역시 끝내 무산되고 만다. 그해 SK는 반도체용 특수가스 회사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반도체 소재 수직계열화에 대한 필요성을 갖게 됐고 SK는 2년 뒤 LG로부터 실트론 지분을 사들이게 된다.
처음엔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 LG 지분(51%)만 인수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연간 투자 예산의 절반이 소진됐다. 그러나 이후 KTB PE 지분(19.6%)도 추가 취득함으로써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까지 충족시킨 SK는 우리은행 채권단 지분(29.4%)까지 사들을 필요성이 높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기술의 해외유출 방지, 책임경영 의지피력 등을 위해 최 회장이 증권사 대출로 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실트론 지분 100%가 SK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이 당시 한 시민단체는 SK가 최 회장 개인에 지분 인수 기회를 제공, 상당한 이익이 기대되는 사업기회를 유용했다고 조사를 촉구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식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2019년 금융감독원이 최 회장이 지분 인수에 사용한 증권사 TRS(총수익스와프)가 법인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벌인 신용공여로 자본시장법 위반이라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렇게 된 마당에 공정위도 4년이 경과된 사안이지만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지난주 이를 위한 심의 장소에 최 회장은 직접 출석해 소명하는 등 정면돌파에 나섰다. 공정위는 이르면 금주 최 회장 실트론 지분 인수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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