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 |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출석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원위원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전윈위의 15일 결정은 사실상 미래 사업 재편 과정에서 재계 총수가 어느 선까지 직접 투자에 나설수 있는지 기준을 정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더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간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는 반도체 웨이퍼(회로원판) 생산회사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지분 70%를 취득했고, 나머지 약 30%(29.4%)는 최 회장이 사들였다. 그러나 한 시민단체에서 회사가 100% 지분 인수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총수 개인에 부당한 이득을 제공했단 주장을 제기했고, 이에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가 4년 만에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전원위는 최 회장의 지분 취득이 ‘사업기회’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제23조)은 특수관계인에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회사의 사업기회 유용으로 간주되려면 수행 가능한 사업이어야 하는 동시에 상당한 이익 발생이 전제돼야 한다.
‘수행(생각하거나 계획한 대로 일을 해냄)’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업 수행은 지속성과 구체성이 담보돼야 한다. 가령 회사의 연계약 청소용역을 특수관계인이 높은 가격에 수주하면 구체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사업수행이라 볼 수 있지만, 회사의 청소 용품을 특수관계인이 일회성으로 구매한 경우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동안 공정위는 총수가 계열사 설립으로 일감 몰아주기하는 행위를 사업기회 유용으로 문제 삼아왔다. 이번 최 회장이 경영권과 무관한 지분을 취득한 것은 사업 수행과는 거리가 있단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상당한 이익의 경우도 현재 실트론 주식가치 상승에 따라 배당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에 이에 해당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치가 하락했다면 동일 행위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 있게 된다. 취득 자산의 사후 평가액으로 사업기회 여부가 결정되는 건 제재의 합리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실트론 인수 당시 반도체 업황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거꾸로 수익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분야에 투자를 단행했다면 그 역시 배임이 될 수 있어 사업진출과 이익 발생을 전제로 한 사업기회를 연결짓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 회장의 지분 인수 과정을 두고서도 공방이 예상된다. 시민단체는 SK가 이사회 개최도 없이 최 회장을 위해 잔여 지분에 대한 미인수 결정을 내렸단 주장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지분 미인수는 이사회 의결 사안이 아니며, SK는 이사회 소위원회인 거버넌스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숙고를 거쳤단 입장이다. 또 최 회장이 취득한 지분은 공정경쟁입찰에 따른 것으로 당시 실트론이 공개매물로 나와 이해관계가 다른 복수의 채권단과 주관사 등이 참여한 상태에서 특정인 특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윈위의 이번 결정은 향후 재계 총수의 인수·합병(M&A) 참여에 대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번 최 회장 조사는 그의 사익편취 논란에서 시작됐지만, 총수의 지분 매입은 회사의 재무 부담을 덜고 책임경영 의지를 확인하는 행위로도 인식될 수 있다. 이번 전원위에서 그에 대한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그룹 총수들의 투자 반경을 좁히고 의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으며 국내기업을 대표하고 있고, 민간경제외교 부문에서 활발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단 측면에서도 이번 공정위 결정이 개인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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