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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아의 현장에서] ‘백마 탄 초인’은 없다

요즘 유통가의 ‘핫이슈’는 온라인시장 대응에 실패한 사업을 둘러싼 인사(人事)다. 순혈주의를 강조했던 롯데그룹의 ‘비(非)롯데맨’ 영입은 그중에서도 단연 파격적이었다.

롯데그룹 유통군(HQ) 총괄대표에 미국계 글로벌 기업 P&G에서 30년간 경력을 쌓은 김상현 전 홈플러스 부회장이 선임됐다. ‘유통가 영원한 맞수’인 신세계 출신의 정준호 롯데GFR 대표가 롯데쇼핑의 신임 백화점 사업부 대표로 기용됐다. 호텔군(HQ) 총괄 수장에는 안세진 전 놀부 대표가 앉았다.

인사는 메시지다. 뚜렷한 성과 없는 혁신에 시달리던 롯데그룹의 이번 인사는 모처럼 등장한 ‘실체 있는 혁신’이라는 평가다. 국내외 성공 사례에 비춰볼 때 잘하기만 하면 유통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와 계열사 간 시너지를 통한 e-커머스사업 확장을 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을 테다. 문제는 온라인사업 확장 이후 계속된 조직 내 피로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게 혁신이라지만 혁신에는 피로가 따른다. 혁신에 공감하지 않는 조직원의 반발, 보수적인 조직문화, 혁신을 떠안은 소수 구성원에게 주어진 과도한 책임, 혁신비용 등을 생각하면 피로감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다. 최근 1년 동안 삼성그룹이나 CJ그룹 등 외부로 이직한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 소속 인재들이 손에 꼽힐 정도다.

이런 점에서 모바일업계에서 “이제 딴 회사 같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바뀐 마이크로소프트(MS)는 롯데그룹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PC 운영체제(OS) 윈도의 성공에 안주하다가 변방으로 밀려난 MS는 불과 6년 만에 전 세계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초우량 기업으로 부활했다. 그 배경에는 ‘조직 쇄신’이 있었다.

2014년 무렵만 해도 MS는 새로운 블루오션이었던 모바일 OS를 애플과 구글에 통째로 내줬다. 노키아 인수로 합류한 하드웨어시장에서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이 무렵 수장이 된 사티아 나델라는 주력 사업을 클라우드, 소셜미디어(링크드인), 메신저 플랫폼(팀즈) 등과 같은 B2B(기업 간 거래) 사업으로 완전히 뜯어고쳤다.

아울러 나델라 CEO는 과거 혁신을 가로막는 관료주의와 사내 정치를 말끔히 제거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실적으로 직원들을 줄 세우는 경쟁 대신 고객과 공감하고 동료와 협력하는 가치를 우선했다. 저성과자를 해고하는 상대평가 중심의 인사 평가 시스템도 대대적으로 손봤다. 윈도처럼 시장을 독점하는 폐쇄주의에서 벗어나 경쟁사와 협업하는 ‘오픈 생태계’를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혼자서 모든 걸 척척 해내는 ‘백마 탄 초인’은 없다. 이정표 없는 낯선 길을 가는 막연함 앞에서 혁신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 때 가능하다. 혁신을 이끄는 새 수장이 마음이 같으면 만리 길도 한 걸음처럼 갈 수 있다는 ‘동심만리(同心萬里)’ 조직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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