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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청년 더는 있어선 안돼”…청년 노숙자의 고백 [추석이 두려운 청년]
자립지원금으로 얻은 월세→고시원→청량리 노숙 생활
코로나19는 홀로서기 하는 청년을 거리로 내몰았다
“청년은 더더욱 노숙에 익숙해지면 안 돼”
노숙자 지원단체 “요즘 노숙인 20%가 청년”
이용호(23) 씨가 거리에서 노숙인을 위로하고 있는 모습 [이용호 씨 제공]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노숙인을 위한 지원단체 프레이포유에서 봉사활동가로 활동하는 이용호(23)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숙자로 거리를 헤맸다. 그는 한 지원단체를 만나 새 삶을 꾸려나가며 더는 자신과 같은 청년 노숙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섰다.

17일 헤럴드경제는 이용호 씨로부터 청년 노숙자에서 봉사활동가가 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밑 빠진 장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고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후 보육원 맡겨졌다. 힘든 학창 시절에도 엇나가지 않고, 국립대에 입학했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지원금이 기숙사비와 생활비까지 해결해 주진 못했다. 휴학을 결심하면서 보육원을 떠났다. 아동복지법상 휴학을 하면 퇴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 봄,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자립정착금 500만원으로 이씨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원룸을 얻었다. 휴대전화 판매대리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많으면 한 달에 200만원을 벌었다. 월세와 밥값·통신비를 스스로 내고 대학 때 빌렸던 대출금도 갚아나갔다. 그러나 그의 홀로서기는 반년도 가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가게는 문을 닫아야 했다.

이씨는 숙소가 제공되는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으나 거절만이 계속됐다. 군대에 언제 갈지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보육원에서 5년 이상을 지내면 입대가 면제되지만 4년 6개월을 지낸 이씨는 입영대상자였다. 그렇게 일자리를 알아보는 사이에 벌어 놓은 몇백만원이 물 새듯 빠져나갔다. 저렴하면서도 밥을 주는 고시원을 찾아 그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10월이 다가오자 고시원비마저 내기 어려워진 그는 결국 청량리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역 생활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이 오기 전 화장실에서 씻기 위해서다. 세면 후 이씨는 역 와이파이를 연결해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러고 나서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밥퍼’에 가서 줄을 섰다. 아침밥을 먹은 뒤 20분 정도 걸으면 또 다른 급식소인 ‘프란시스꼬’로 가 200원을 내고 또 한끼를 해결했다. 이씨는 “저도 이걸 처음부터 다 안 건 아니다. 할아버지 노숙자 분이 저를 손주뻘이라면서 하나하나 알려주시기도 하고 아버지뻘 되는 분이 침낭도 주시고 해 거리 생활이 덜 힘들었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주변을 계속 돌아다녔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면 주변 백화점에서 충전하거나 사람이 적은 공간을 찾아 쪽잠을 잤다. 저녁은 어떻게 해결했냐는 질문에 이씨는 “스마트폰 잠금화면에서 광고를 보면 포인트를 주는 게 있다. 어플을 깔거나 유튜브를 구독하면 몇 백원씩 적립되는 셈인데 그걸 모아서 편의점에서 끼니를 20번 정도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용호 씨가 노숙인의 손을 잡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용호 씨 제공]

이씨는 도움받을 방법을 찾았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보육원 출신은 퇴소 시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노숙을 하던 그는 주소지가 없어 신청이 어려웠다. 또 다른 30대 청년 노숙인은 이씨에게서 “군대를 빨리 가라. 가면 밥도 주고 잘 곳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코로나19 시기에 군대 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겨울이 올 무렵, 이씨는 지금 속해 있는 공동체의 목사를 만난 노숙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이씨는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제가 노숙을 해 봤으니 그분들이 뭐가 필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더라”면서 “제가 힘들 때 목사님이 절 도와줘 기회를 얻은 셈이니 이 기회를 허투루 보내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나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노숙인을 만날 때마다 아픈 곳이 없는지 먼저 물으며 가방에 파스·소염 진통제 등 상비약을 늘 들고 다닌다. 요즘은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에게 겨울 날 용품이 있는지 묻는다.

청년 노숙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씨는 “절대 노숙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노숙에 익숙해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면서 “그럼 고시원이나 쪽방 생활도 답답해서 할 수가 없고 어떻게든 일을 구해도 자유로웠던 자기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해 일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청년 노숙인은 더 이상 희귀한 존재가 아니다. 프레이포유의 손은식 목사는 최근 노숙인의 20% 정도가 청년층이라고 증언했다. 손 목사는 “부모님이 있어도 도움받지 못하는 사람, 돈 빌릴 친구가 없거나 직장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 혹은 직장이 있어도 갑작스러운 실직 때 지원받을 체계가 없는 분들이 노숙을 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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