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권 집권 후반기 '항명'잦아
"'신현수 사의=레임덕 징후 아냐"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연합] |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항명(抗命)’은 ‘명’을 거스른다는 얘기다. 오라는데 오지 않고, 가라는데 가지 않으며, 남으라는데 남지 않는 것이 항명이다. 명령을 철저히 따르겠다는 의미인 ‘복명(復命)’의 반대말이다. 전시 지휘관은 항명을 한 부하직원에 대해 생사여탈권까지 가진다. 기강 해이는 전열의 붕괴로, 나아가선 조직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파동’이 일단락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신 수석은 “거취를 대통령에게 일임하고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며 업무에 복귀했다. 신 수석은 지난 7일 법무부의 검찰장급 인사 발표 후에 대통령에 수 차례 사의를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그때마다 ‘만류’했다.
‘청와대는 “신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에 거취를 일임했다”고 밝히고 ‘복명(復命)’임을 강조해 상황을 일단락 지으려 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는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검찰인사를 둘러싼 박범계 장관과의 이견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정수석과 협의 없이, 박 장관이 독단적으로 검찰인사를 발표했다는 설(說)과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았다는 설, 신 수석이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는 설 등이 분분하다.
경위야 어찌됐든 참모인 신 수석은 문 대통령이 재가한 검찰 인사안에 반발하는 모양새가 됐다. 문 대통령이 사의를 수차례 만류하고 '남으라'는 령(令)을 내렸음에도, 신 수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동안 버티기도 했다. 지난 22일 휴가에서 복귀한 신 수석이 사의를 거뒀는지에 대해선, 24일 현재까지도 청와대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항명은 주로 정권 후반기에 발생한다. 대통령의 ‘그립’(장악력)이 약해졌을 때다. ‘어차피 대통령은 바뀌고, 각료와 참모들도 제 살길을 가야 되지 않냐’는 것이 정치권에서 설명하는 항명의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의 일이다. 고 김영한 전 수석은 2015년 1월 국정농단의 단초를 제공한 사건인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설명하라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표를 제출했다. 2014년 12월 40%대를 기록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5년 1월 20%대까지 떨어졌다.
대통령의 국가 정책 방향을 입법으로 지원해야 하는 여당에서 반발이 일기도 한다. 넓게 보면 이역시도 항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2010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이 발의한 ‘세종시 수정안’을 박 전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이 부결시킨 것이다. 법안 부결로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은 가속화됐으며, 차기 대권의 무게추는 박 전 대통령으로 기울어졌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싸고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 보자”고 대통령에 맞섰다. 김 전 장관은 당시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신 수석의 사의가 항명인가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야권은 신 수석의 사의를 '항명'으로 규정하고 레임덕과 연결시키고 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6년 전 당시 문재인 의원이 '김영한 민정수석 항명 파동'에 콩가루 집안이라려 위아래도 없고, 국가기강 쑥대밭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신현수 항명, 이것이야말로 콩가루 집안 위아래도 없고 국가기강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 아니냐"고 했다. 같은당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사퇴 파동으로 문 정권의 ‘레임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했다.
청와대는 신 수석의 사의가 지난 7일 있었던 ‘검찰인사’를 둘러싼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이견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항명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운영위의 출석한 유 실장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항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항명이 아니다"고 했다.
청와대는 기강해이로 비춰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하고 있다. 청와대는 박 장관이 신 수석의 부하직원인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검찰인사를 논의했다는 의혹과 문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수차례 밝혔다.
신 수석의 사의파동을 레임덕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해석도 만만찮다.
레임덕은 현 정권에 대한 ‘대항마’가 있을 때 생기는 ‘권력누수’현상이다. 레임덕의 전제는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의 붕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견고하다. 문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은 40%대(2월 리얼미터 기준)으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높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신 수석의 항명은 레임덕과 관계가 없다"며 "레임덕은 대통령에 대한 대항마가 있을때 발생한다. 신현수 사의 파동은 오히려 집권 초부터 이어진 ‘자기 사람만 쓰는 인사’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했다.
사의파동의 원인이 '검찰 인사'라는 사실도 주목된다. 검찰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자청했을대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의 근본 원인 역시 '검찰인사'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의 갈등이후 "인사권자로서 사과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뒤, 신 수석을 임명했다. 신 수석은 문재인 정부의 최초의 검찰출신 민정수석으로, 임명 될 당시 검찰과의 관계개선을 하라는 문 대통령이 의중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져온 검찰인사를 둔 잡음이 장소만 바뀌어 청와대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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