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선 정국에 여유도 감지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11일 오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에게 인사차 대구 동구 팔공산 동화사를 찾은 후 떠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야권의 대권주자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그간 ‘앙숙’ 관계였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거듭 띄워주고 있다. 홍 의원은 앞서 서로 앙금이 남아있던 나경원 전 의원과도 화해했다. 지난 대선 때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도 악감정을 푼 모습이다.
뜻이 맞지 않으면 같은 진영에도 강한 발언을 주저하지 않던 홍 의원의 그간 행보에 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촉이 빠른 그가 대중에게 ‘통합론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이런 움직임에 나선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 글을 통해 ‘투트랙 2단계 단일화’에 동의한 김 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김종인 위원장님”이라고 부르고 “사감을 접고 입당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안철수 (국민의당)후보를 단일화를 통해 받아주는 것으로 정리해준 점에 대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야권의 큰 어른으로 대의(大義)정치를 해주시고, 당의 정체성 확립에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여당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을 개원 후 처음으로 비난하는 것은 우리가 비로소 야당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반(反)문재인 인사들은 모두가 한 편”이라고 했다.
홍 의원은 앞서서도 김 위원장을 두둔하는 글을 쓰고 “김 위원장의 원전 관련 ‘문 정권 이적행위’ 발언은 토씨 하나 틀린 말이 없다”며 “청와대가 법적 조치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경악할 만하다”고 했다.
홍 의원은 불과 근 1년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종인 당시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향해선 “정체불명의 부패 인사”, “노욕으로 찌든 부패 인사가 당 언저리에 맴돌면서 개혁을 운운하는 몰염치한 작태”라고 원색 비난했다.
나경원 전 의원(오른쪽)과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12일 서울 마포구 한 식당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 |
그런가하면, 홍 의원은 지난달 12일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하루 앞둔 나 전 의원을 만나 그간 쌓인 앙금을 털어냈다. 나 전 의원은 “과거 당 대표였던 홍 의원이 당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출마를 거의 강권했다”며 “이번에는 꼭 열심히 해 당선되라는 덕담을 해줬다”고 했다.
법조계 선후배인 두 사람은 실제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당 대표였던 홍 의원이 나 전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를 맡은 2019년 홍 의원이 나 전 의원의 원정출산과 아들 이중 국적 의혹을 거론하고, 원내 투쟁전략을 평가절하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었다.
홍 의원은 안 대표와도 관계가 나아졌다. 지난달 11일 대구 팔공산 동화에서 ‘깜짝 만남’을 한 이후다. 당시 두 사람은 종정 스님 곁에 나란히 앉아 1시간 가량 덕담을 나눴다. 안 대표는 “홍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해 ‘큰 뜻을 품었으니 좋은 결과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2017년 4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토론을 했다. 당시 안 대표는 “국민만 보고 이야기하겠다”며 한사코 홍 의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을 거부했다. 홍 의원이 “사람을 좀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라”고 여러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홍준표 무소속 의원(오른쪽)이 11일 오후 대구 동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가운데)에게 인사차 들렀다 방문 시간이 겹쳐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연합] |
홍 의원의 미묘한 행보 변화는 ‘통합론자’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음 대선 정국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통합’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움직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앞서 여권의 대권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새해 첫 날부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론을 거론하는 등 ‘통합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촉이 좋은 홍 의원도 국론분열의 현 주소와 대통합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 의원의 이런 모습에는 여유도 묻어난다. 홍 의원의 입장에선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힌 안철수·오세훈·나경원 3인이 뛰어든 것 자체가 나쁘지 않다. 세 명 중 누구라도 야권 단일후보가 돼 당선되면 11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선에 출마하기가 쉽지 않다. 경선에서 떨어진 나머지 두 명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을 받지 않는 이상 경쟁력에서 타격을 받을 상황이다. 홍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는 김 위원장도 분위기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직을 내려놓을 예정이다.
홍 의원의 성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곳곳에서 들린다. 야권의 한 의원은 “홍 의원은 뒤끝 없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라며 “홍 의원은 한때 갈등 관계에 놓인 이였다고 해도 그 사람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언제든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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