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이사 수요 공급 맞지 않을 것
서울 전세수급지수 2015년 이후 최악
전세→월세 전환도 빠르게 나타나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 “입시가 끝나도 눌러앉겠단 사람이 많아요” 강남구 대치동 중대형 재건축 아파트에 사는 A씨는 내년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벌써부터 걱정이다. 집주인은 진작부터 실거주를 통보했는데 주변 전셋값은 크게 올랐고, 입시가 끝나도 서울 전역에서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한번 더 살겠다’는 이웃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학군지로 인기지역인 이 곳은 전셋값이 크게 오르자,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며 전세 매물 감소세가 뚜렷하다. [헤럴드경제DB] |
새 학기 시작 전, 봄 이사철 성수기를 앞두고 전세난이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 학군지에선 수학능력시험 전후로 전세 매물이 증가하는데, 기존 세입자가 ‘옮기면 손해’인 상황이 되면서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세 수급 지표는 새로 업데이트 될 때마다 ‘공급부족’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알린다. 11월 서울의 KB전세수급지수는 192.3으로 2015년 10월 이후 가장 높다. 이 숫자는 0부터 200까지 범위로, 100을 초과할수록 전세가 더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세 매물이 귀하다보니,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 됐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13일 보증금 1억원, 월세400만원에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 통상 보증금 1억원대에 월세 200만원대로 계약이 마무리되곤 했는데, 단박에 월 200만원 값이 올랐다.
같은 면적 전셋값도 현재 10억5000만~10억7500만원에 매물이 한두건 나와있는데, 넉달 전 새 임대차법 시행 전보다 2억5000만원가량 오른 값이다.
전셋값이 오르고, 월세로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것은 새 임대차법 시행 전부터 예고됐던 바였다. 문제는 속도다.
앞서 월세 400만원을 기록한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단지처럼, 강북 곳곳에서도 월세 100만원을 넘기며 고가의 월세 계약이 급격히 늘고 있다. 성북구 길음뉴타운7단지 두산위브는 114㎡가 11월 3일 보증금 2억5000만원, 월세 200만원에 계약서를 썼다. 올 1월 거래됐던 월세는 보증금 1억원, 월세 170만원이었는데 보증금과 월세 모두 크게 올랐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 래미안 e편한세상도 84㎡가 지난달 말 보증금 1억원 월세 190만원에 계약됐다. 이 아파트 같은 면적의 11월 실거래 신고된 11개 임대차 계약 가운데, 절반 이상인 6개가 월세 계약이다.
전세난이 월세난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들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가 크게 오르고, 내년이나 후년 더 오를 것이라는 ‘조세 공포’를 갖게 된 집주인은 이를 전가하기 위해 월세 전환으로 돌아서고 있다.
실제 임대차 시장 수요가 끊이지 않는 학군지나 직주 근접지에선 빠르게 월세 매물 증가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4일 현재 강남구 대치동은 전세 매물이 113건, 월세 매물이 246건으로 월세로 나온 매물이 두 배가 넘는다.
시내 접근성이 좋아 맞벌이 직장인 주거지로 선호되는 마포구는 구 전체 기준 전세 매물이 412건, 월세 매물이 401건으로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시점인 7월 말만 해도 전세 매물(1084건)이 월세 매물(789건)보다 27.2%가 많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내년 봄 이사철이 전세난의 또 한차례 고비가 될 것 같다”며 “전세시장 가격 상승에 따라 매수 수요로 돌아서는 이들이 생기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하락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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