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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제도권 정치 떠나겠다”던 임종석, 왜 총선판에 ‘자진소환’했나
총선 불출마하고 통일운동 하겠다던 임 전 실장
4·15 총선 동작을 이수진 후보 지원유세에 등장
“싸움꾼 나경원을 국회에서 몰아내자” 독설 날려
나경원은 “나라 망친 3년부터 반성하라” 맞대응
갑자기 후보 vs 후보 아닌 후보 vs 지원군 구도
전문가 “대권가도 의식 손놓고 있기 어려웠을것”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지하철 남성역 주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동작구을 이수진 후보의 선거유세에서 이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연합]

정치인의 ‘입’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은퇴를 시사하면서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고 했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총선판을 통해 복귀(?)했다. 후보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지원유세자로 선거판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제도권 정치를 떠난다며 정계은퇴까지 운을 띄웠던 그가 왜 선거판에 잠시나마 복귀했는지 사정은 그만이 알겠지만, 세간의 시선을 끈 것은 그가 지원유세로 나서면서 특정 후보와 거센 입씨름을 벌였다는 점에 있다. 어찌보면 선거판의 정중앙에 ‘자진 소환’한 셈이어서 눈길을 잡는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임 전 실장은 전날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와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가 경쟁하는 서울 동작을 지역에서 지원 유세를 펼쳤다. 이 후보를 돕기 위한 행보였다. 임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20대 국회를 동물국회로 만든 장본인 중의 장본인은 나경원 후보”라며 “(그런) 나 후보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싸움꾼을 국회에서 몰아내자”고 했다. 지원유세에 나서 상대 진영 후보에 대한 최고 수위의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면서 “일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새로워지고 대한민국 정치가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상대 진영 후보를 거세게 깎아내리며, 자당 후보를 거론하면서 동작을 국회의원의 적임자라고 한껏 추켜세워준 것이다.

당장 나 후보 측의 반발이 크게 일었다. 나 후보는 입장문을 내고 “임 전 실장이 서울 동작구 주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우롱했다”며 “‘친문 비리 게이트’ 수사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그가 국민을 기만하는 궤변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 전 실장은 함부로 선거판을 휘젓고 다닐 시간에 지난 3년 나라를 망쳐놓은 것부터 반성하기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임 전 실장의 “싸움꾼을 국회에서 몰아내자”는 말에 나 후보가 “3년 나라 망쳐놓은 것 부터 반성하라”고 대응하면서 갑자기 동작을 선거판에 ‘임종석 vs 나경원’ 설전이 벌어진 것이다. 한때 정계은퇴까지 시사했던 임 전 실장이 돌연 선거판에 나타나 특정 후보와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셈이어서 그 배경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종로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던 임 전 실장은 정세균 의원(현 국무총리)이 지역 사수 입장을 보이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인물이다. 지난해 11월 17일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 먹은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총선에 불출마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며 “서울과 평양을 잇는 많은 신뢰의 다리를 놓고 싶다. 그리고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 글에서 그가 불출마를 하게된 배경이 짐작됐다.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한 여권의 거물이지만, 현실정치에 대한 한계와 향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앞에서 향후 통일운동에 전념하겠다는 의중이 절절이 배어 있는 글이었다.

당시 여권에선 ‘임종석의 퇴장’에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의 정치적 무게감을 감안하면 총선판에서 빠지는 것은 여권으로선 큰 ‘화력 손실’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에 여권에선 여러차례 임 전 실장에게 총선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총선과 거리를 둬왔다.

측면 지원은 있었다. 그는 지난 1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정강정책 방송연설 첫 연설자로 나서기는 했다. 임 전 실장은 이 정강정책 연설에서 “미래세대에 평화를 넘겨주자”며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북핵리스크, 코리아리스크를 꼽고 이 둘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다는 절박한 메시지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때 그 자리에서도 일부 여권 인사가 임 전 실장에게 ‘총선에서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평화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하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며 거절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런 그가 동작을 총선 현장에 등장해 특정 후보에 지지를 표하면서 상대 진영 후보에 ‘독설’을 날렸다는 것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총선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고, 정계은퇴 뜻까지 내놨던 그는 왜 총선판에 등장해 ‘주목’을 받는 일을 했을까.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임 전 실장의 이런 행보와 관련해서 “선거를 지켜보기만 한다면 훗날 대권가도를 기약할 수 없으므로 손 놓고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의 이 말은 임 전 실장이 향후 정치판에서 큰 일(?)을 도모할 뜻을 거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총선에는 불출마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의욕이 강하다는 것이다.

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지난 2일 서울 광진구 자양사거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광진을 고민정 후보(오른쪽)가 유세 지원을 위해 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손을 흔들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

임 전 실장의 요즘 행보를 보면 지난해 11월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고 한 말과는 상당히 배치된다는 평가도 뒤따르는 게 사실이다.

임 전 실장은 지난 2일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민주당 후보(서울 광진을) 지원에 나선 이후 민주당 선대위에서 중책을 맡은 이 이상으로 광폭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이날은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상징적으로 고 후보의 유세 현장을 찾은 것이다. 고 후보의 경쟁자는 오세훈 후보(전 서울시장)이다. 임 전 실장은 이날 유세차에 올라 오 후보를 겨냥해 ‘광진의 과객’이라고 꼬집었고, 고 후보에 대해선 ‘광진댁 고민정’이라고 표현하며 비교우위를 강조한 지원 유세를 펼쳤다. 광진을 유권자들에게 ‘과객’인 오 후보 보다는 ‘터줏대감’이 될 수 있는 고 후보를 선택해달라는 메시지였다. 자당 후보에 대한 총력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 뿐 만이 아니었다. 임 전 실장은 광진을에 이어 3일엔 윤영찬(성남중원), 4일엔 이탄희(용인정), 5일엔 홍정민(고양병) 후보 등 10여명의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원 유세를 소화했다. 임 전 실장은 6일부터는 ‘정치는 함께 하는 것’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광주에 내려갈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에선 이에 이런 임 전 실장의 행보를 두고 사실상 파상적인 정치 행보를 재개한 것이며, 차기 대선행보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임 전 실장 측은 이런 시각을 경계했다. 임 전 실장은 지원 유세에 나선 것에 대해 “이낙연 공동 상임선대위원장도 (나에게) 전화를 해줬고 처음부터 제 도리는 다 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바 있다”고 했다. 다른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임 전 실장 측 역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이번 선거가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나선 것일 뿐, 향후 정치적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자면, 대통령 비서실장을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책임감을 갖고 이번 총선에서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일 뿐, 총선이 끝나면 다시 정치무대와 떨어져 있겠다는 뜻이 된다.

정말 그럴까. 갈등만이 지배하는 현실정치에 한계를 느껴 정치를 떠날 생각을 했고, 총선 지원 후엔 후 정치는 생각지 않는다는 임 전 실장. 상대진영 오세훈 후보를 ‘과객’이라고 몰아부치고, 나경원 후보를 향해 “국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독설을 날리는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순수한 마음의 책임감성 총대메기 행보일까. 헷갈린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임 전 실장을 잘 아는 정치권 한 인사의 분석은 이렇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참으로 다양한 사정으로 정치판을 떠나겠다고 했지만 이를 지킨 이는 별로 없다. 이번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이해타산에 밝은 정치권에서의 ‘임종석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한 임 전 실장은 자신이 뱉은 ‘제도권 정치를 떠나려 한다’는 말과 정치 재개의 명분 사이에서 한동안 고민하는 행보를 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내 시각도 비교적 같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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