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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의 현장에서] 법무부의 성역있는 검찰개혁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속담이 있다. 오얏나무 열매를 딴 도둑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택일해야 한다. 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매는 걸 하지 말거나, 뭘 했는지 시시콜콜 설명하거나. ‘내가 나무 아래서 뭘 했든, 좋은 의도로 했으니까 알려고 하지 마라’는 태도는 최악이다.

요즘 법무부의 검찰 개혁안을 보면 이 속담이 떠오른다. 지난 9월 이래로 법무부는 여러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다. 피의사실 공표금지, 포토라인 폐지, 공개소환 금지, 직접수사부서 축소 등은 모두 ‘피의자 방어권’을 강화하는 안이다. 여기에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에게 수사내용을 사전보고하게 한다는 골자의 개혁안이 최근 추가됐다. 개혁안을 종합하면 하나의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검찰의 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

최근 검찰개혁에 ‘성역(聖域)’이 있다.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해서 비밀성을 유지해야 하나보다.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검찰개혁 제1의 과제다. 법무부는 예전부터 준비해온 사안들이라고 하지만, 검찰의 특별수사부는 정권출범과 동시에 비대해졌다. 강골검사이자 대표적인 특수통인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도 현 정권의 특수부 강화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축소의 길을 걷게 됐다. 피의사실 공표, 피의자 공개소환은 국정농단, 사법농단을 비롯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가 이뤄지던 시기에 제일 활발하게 이뤄졌다가 현시점 가장 시급한 개혁 의제가 됐다.

개혁안을 내놓은 게 문제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의제 선정방식과 우선순위다. 검찰은 이미 특별수사부를 서울중앙지검 등 4곳만 남기고 전부 폐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8일 김오수 법무차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전보고한 개혁안에는 여기에 직접수사부서도 모두 없애는, 법무부 자체판단으로 인지수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방침이 들어갔다. 개혁대상이라지만 어쨌든 현 정부가 국가세금을 들여 양성한 고급 수사인력이다. 그 인력을 어떻게 재배치할지에 대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몰래 추진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법무부는 앞서 언론보도도 자체적으로 오보인지를 판단해 출입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협의없이 만들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검찰개혁의 목적과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자. ‘검찰개혁’과 국민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 검찰은 범죄자를 잡아서 처벌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 ‘머리 좋은 노역(勞役)꾼’이다. 그들의 손은 범죄자만큼 지저분하다. 국민 중에서도 ‘범죄자’를 상대해야 하니까. 따라서 검찰이 개혁대상이 된다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범죄자를 기소하지 않아서와 나머지 하나는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기소해서. 그렇다면 어느 쪽 실수가 반복됐을 때 악영향이 클까. 답은 전자다. 검찰이 범죄자를 기소하지 않아 범죄자가 민주사회가 구축한 법치를 뒤흔들 때, 국민이 체감하는 폐단이 발생한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우선순위는 검찰이 기소해야 할 사람을 기소하지 않았을 때에 있다. 물론,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견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관련 법안이 현재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긴 하다. 하지만 공수처 관련 법률안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검찰의 수사범위 중 일정한 인적 범위를 떼어내 공수처의 수사대상으로 한 것 외에는 검찰과의 차이점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 생각해보자. 공수처가 기소할 사람을 기소하지 않을 때 견제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조직이든 권력을 장악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부패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가 자리잡을 수 있는 부령과 규칙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검찰이든 공수처든 수사권 및 기소권 남용을 통제하려면 결국 법무부는 새 법률탄생으로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이 제도적으로 잘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결국 법무부의 업무이니까.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친정권 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당정청이 독단적으로 개혁을 밀어붙인다면 검찰이든 공수처든 자율성과 공정성,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 고인 물이 썩는 법이라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지하암반수나 잘 설계된 빗물저류조 안의 빗물은 썩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천이라고 물이 안 썩는 것도 아니다. 고인 물이든 흐르는 물이든 세심하게 조건을 조성하지 않으면 다 썩기 마련이다. 일언반구 협의없이 불투명하게 추진하는 개혁은 물을 다시 썩게 할 수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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