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역센터 찾아가 “도와달라” 부탁…학비 등 지원 예정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배가 고파서 그랬어요. 다신 경찰서에 안오겠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편의점에서 음료수 2500원어치를 훔쳐 경찰서에 온 80대 할머니가 잔뜩 위축된 상태로 말했다. 할머니는 지난 10일 오후 편의점에서 우유와 주스 등 음료수를 훔쳐 절도 혐의로 입건된 상태였다.
19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당일 서울 강남구의 한 편의점에서 “할머니가 물건을 훔쳐 갔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경찰관들에게 체포됐다. 사건을 조사중이던 강남서 형사 1팀 김정석(50) 경위는 전과도 없는 80대 노인이 먹을 것 몇천원어치를 훔친 것이 의아했다. 할머니는 쌀쌀한 날에도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 그랬다”고 답했다. 경찰이 확인해 보니 할머니는 빌라 반지하에서 고등학생 손자와 둘이 어렵게 살고 있었다. 김 경위는 팀장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3일 뒤 김 경위는 팀장 등 동료 형사들과 함께 할머니가 사는 지역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할머니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는 건 아닌지 알아봐야 했다. 주민센터에서는 “할머니는 아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할머니 아들이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형사들은 주민센터 직원에게 할머니의 사정을 설명하고 “손자의 학비와 생활용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관심을 가져 달라”고 전했다. 직원은 “학비와 생활용품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할머니가 굶으시는 일이 없게끔 구호물품 등이 전달되도록 조치하고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생활고로 벌어진 가벼운 범죄인 점을 고려해 경미범죄심사위원회 회부를 거쳐 훈방 등으로 선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경위는 “날씨도 추워지는데 연로하신 할머니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걱정스러워 사정을 알아보게 됐다”며 “최대한 할머니에게 좋은 방향으로 선처하는 방법을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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