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프로파일러 13일동안 9차례 대면조사
이 씨와의 신뢰 형성과 객관적 증거 통한 압박수사 병행해
전문가들, “잦은 면담이 이 씨에게 조사에 대한 의미 부여했을 것”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56)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시인했다. 완강하게 범행사실을 부인하던 이 씨의 ‘철벽’을 무너뜨리는 데는 이 씨와 친밀감을 형성한 프로파일러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2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주부터 자신이 총 14건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진술을 순차적으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성사건 10건 중 모방사건으로 결론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와 화성과 청주에서 발생한 5건의 범행을 본인이 한 일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이다. 지난달 18일부터 진행된 이춘재 조사 13일만에 받아낸 자백이었다.
이 씨의 자백을 이끌어낸데는 9명의 프로파일러 수사가 결정적이었다. 경기남부청은 조사가 시작된 지난달 18일부터 20일까지 3차례 이 씨가 수감중인 부산교도소를 찾아 대면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씨는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결국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을 끌어 내기 위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9명의 프로파일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중에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았던 공은경(40) 경위도 포함됐다.
프로파일러들은 9차례의 대면조사 동안 이 씨와의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뜻하는 ‘라포’를 형성했다. 동시에 화성사건 5, 7, 9차 증거물에서 나온 DNA와 이 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 씨를 압박했다.
법 최면 조사를 통한 목격자 진술의 확보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경찰은 화성 7차 사건 후 용의자를 목격한 버스안내양을 불러 최면 조사를 실시했고 당시 목격한 사람이 이춘재의 사진(몽타주)과 일치한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리고 경찰은 결국 부산교도소에서 이 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잦은 면담을 통해 이 씨가 조사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한 점을 자백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씨가 면담을 거절할 수 있었는데도 9차례나 이어나간 것을 보면 조사관들이 용의자와 라포 형성을 잘한 것”이라며 “친밀감이 형성되고 면담이 이 씨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를 일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가 화성 사건 외의 여죄까지 밝히며 마지막 증언을 한데는 가석방 가능성이 사라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석헌 순천향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씨가 무기수라서 가석방 가능성이 있었지만 경찰이 DNA와 목격자 진술 등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추궁을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거짓말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가석방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점도 자백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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