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이태형의 현장에서] 격화하는 TV 화질 논쟁…소모적 기술논쟁, 소비자는 기다리지 않는다

게임에는 ‘룰’이 있기 마련이다. 플레이어들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아레나(경기장)’에서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자웅을 겨룬다. 스포츠 경쟁의 가장 기본적인 룰은 ‘끝’이 있다는 데 있다. 팽팽한 접전이 벌어지면 연장까지 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지막을 상정하고 경쟁을 벌인다.

스포츠에 적용되는 이런 시한(時限) 개념은 기업 간 경쟁으로 들어오면 확연히 달라진다. 그 치열함이 게임과는 크게 다르다. 무한 경쟁을 일컫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장에서 경쟁자를 아레나에서 밀어내느냐 밀리느냐는 곧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국내 전자업체 간의 TV 화질 논쟁도 게임의 종료 시간을 정해 놓을 수 없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안별로 1라운드, 2라운드 일일이 세는 것도 이제는 무의미하다. 논쟁 참여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확전에 확전을 거듭할 태세다.

TV 화질을 평가할 때 언급되는 ‘CM(Contrast Modulation, 선명도)’값을 놓고 촉발된 양사 간의 ‘8K 목장의 혈투’는 9월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전시회인 ‘IFA 2019’ 현장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지난 17일에는 국내에서 양사가 오전(LG전자), 오후(삼성전자)에 각각 기술설명회를 열고 재점화했다.

화질 논쟁은 시작이었다. 이어 8K 컨텐츠 재생 문제를 놓고 각 사가 자체 제작한 유튜브 영상을 공개하면서 신경전을 벌였다. 지금은 삼성전자의 ‘QLED’ 제품명의 허위과장광고 여부를 놓고 공정거래위원회로까지 사안이 넘어가 있는 상황이다.

현장의 기자로서 생존과 도태의 기로에서 사활을 걸고 대결하는 양사의 절실함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가슴에는 답답함이 남는다. 양사의 논쟁의 과실이 소비자에게 실효가 있을 지 자신이 없어서다. 양사의 직원들이 야근에 야근을 거듭하며 공격 포인트와 대응 논리를 찾고 있지만, 당장 시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현실적인 대목인지 따져 보자는 말이다.

어느 일방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전제로, 한 명의 소비자의 입장에선 사실 CM값이 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밤새며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 진보가 이미 상당히 이뤄진 최근의 제품들 사이에서 미묘한 기술 차이를 소비자들은 분별하기 쉽지 않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많은 기능 중에 당장 기자가 하루에 8할 이상을 할애하는 것은 통화와 모바일 메신저 기능 뿐인 것과 비슷하다.

전자업계를 담당하면서 실제 각 사의 TV가 출시되기 전에 바로 눈앞에서 화질을 비교해본 바로는 일방의 우열을 점치기는 어렵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는 자체 발광을 통한 ‘완벽한 블랙’이 가능해 야경을 볼 때 좋고, QD(퀀텀닷) 필름을 입힌 LCD(액정표시장치) 기반의 QLED TV는 색재현력을 높여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는데 장점이 있다 느껴진다.

그나마 이번 화질 논쟁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했던 ICDM에서도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ICDM은 측정 방식의 규격과 기준을 제시할 뿐 TV 등 제품 화질의 적합성 여부를 결정하거나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가전 명가들의 싸움판에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서로의 우위를 주장하며 상대방을 비방하는 현 형국은 선의의 경쟁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다. 더 이상의 소모전은 양사에게 득이될 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누군가가 어부지리를 얻을 공산이 크다.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가 공세를 펼치며 세계 TV 시장점유율을 올리고 있는 중국 TV를 내 집 거실에 두고 싶진 않다.

자사의 기술에 자신이 있다면 그 기술에 집중해 스스로의 브랜드를 키워 나가도 충분하다.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좋은 화질의 TV를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정보의 홍수 시대다. 소비자들이 마냥 어리석지만은 않다.

th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