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팔 도시기반시설본부 도시철도계획부장은 서울 도시철도 50년을 맞은 소회가 누구보다 각별하다. 김 부장은 “토목사업 중 최고 난제가 지하철 사업이다. 매 공사 때마다 불안하고 험한 소리도 듣지만, 개통 후 지역주민의 ‘고맙다’는 한마디에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1968년 서울에서 도로 교통 체증이 심해지자, 서울시는 노면 위를 달리던 전차를 없앴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서울 인구는 날로 늘어갔지만, 시내버스 외에 이렇다할 대중교통은 없었다.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서울로 인구가 더 집중될 것이란 당연한 우려와 반대에 부딪쳐야만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박 대통령은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선진국 사례를 들어 찬성 의견을 낸 뒤에야 지하철 건설을 수락했다. 마침내 1970년 3월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9.8㎞ 지하구간에 철도를 놓는 계획이 발표됐다. 도시교통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서울 지하철’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서울 도시철도 건설 기술은 이라크, 몽골, 홍콩의 철도관계자들이 견학 올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열차 운영과 서비스 질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세계 도시 발전도 평가 도시교통 부문 1위(2016 스페인 나바라대학 경영대학원 발표), 4G 기반 와이파이 서비스 부문 세계 최고(2017년 7월 미국 CNN), ‘세계 관광객이 해야할 단 한가지, 서울 지하철 타기’( 2016년 트립어드바이저) 등 호평의 바탕이 됐다.
서울 도시철도 50년을 맞아 시청 현직 공무원 중 철도 건설 부문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김진팔(57) 도시기반시설본부(이하 도기본) 도시철도계획부장을 만났다. 8호선 연장(별내선), 5호선 연장(하남선) 등 여러 공사현장을 오가느라 바쁘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는 서울 도시철도의 우수성과 험지로 손꼽는 도기본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직원들의 노고를 알리는 지면이란 기자의 말에 ‘낚여’ 겨우 짬을 냈다. 생소한 기술 용어, 난해한 공정 설명 탓에 쉽지 않은 대화였지만, 도시철도에 대한 공직자의 열정과 애정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통나무로 받치던 공사…가교형 강재받침 공법으로 진화=1호선 건설 때만해도 일본의 기술과 자본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난 50년간 서울 도시철도 건설 기술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김 부장은 “과거엔 측벽도 다 통나무로 받치고 하지 않았나. 길을 막고 차로를 줄여 시민 불편도 컸고 안전사고도 숱했다. 지금은 강재(鋼材)로 하고 다 지하로 공사하니까…”라고 했다. 그는 서울의 철도 시공능력에 대해 “많이 극찬받는다”면서 “좁은 땅에 400㎞를 건설했는데, 빌딩 밑, 아파트 밑, 강 밑으로도 지나 나고 세계 이런 도시가 없다”고 자부했다.
그간 맡은 공사 중 최고의 난공사로는 9호선 2단계(논현동~잠실종합운동장) 구간의 917공구를 꼽았다. 탄천하부를 터널로 통과하고 기존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역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그 밑에 정거장을 건설한 구간이다. 2012년 당시 하루 230만명이 이용하던 지하철 2호선 54m 구간 아래에 강재로 가교형 받침을 대고, 지하 36m 바닥까지 굴착한뒤 새로운 930 정거장의 박스 구조물을 짓는 신공법 ‘가교형 강재 받침공법’이 첫 시도됐다.
당시 국내외 기술자로부터 큰 관심을 모아 국내외 600여명이 현장을 견학했고, 2012년 3월 미국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채널이 촬영해 이듬해 ‘슈퍼시스템’이란 제목으로 전세계에 방송됐다.
가교형 강재받침공법은 이후 8호선 석촌역 하부에 9호선 933정거장을 건설할 때도 적용됐다.
가장 최신 노선인 9호선에는 최신 공법들이 적용됐는데, 919~921공구에 쓰인 쉴드 TBM(Tunnel Boring Machine·원형의 회전식 터널굴진기)이 대표적이다. 2014년 8월 석촌 지하차도에 지반침하가 나타나는 등 주민 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 공사 구간에 지하수가 누출되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김 부장은 “일반 터널 공법은 지하수를 24시간 퍼내야하지만, 이건 벽면에 딱 붙어서 물이 한방울도 새지 않는다”고 소개하며 “지하수 보존 등 친환경적인 공법이기 때문에 전국으로 확산되어야하고, 운전자(오퍼레이터) 등 전문 기술인 양성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관련 교육, 면허제도를 만드는 등 10년 뒤를 대비해야한다”고 국토부를 염두해 조언했다.
▶민원인에게 욕먹는 일 허다…죽인다 협박도 들어=공사 구간 주변 주민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을 상대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김 부장은 “민원이 가장 거센 부분은 환기구”라고 했다.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 필수시설인 환기구는 대부분 도로 위 네거리에 있는데, 9호선 2단계를 진행할 때 한 시민이 자기 점포 앞에 환기구는 절대 안된다며 환기구 설치 예정 자리에서 한달간 차량을 주차해 두고 빼지 않았다. 이 민원인은 공사중지가처분 소송까지 냈지만 패소했다.
9호선 당산역 버스 안내판 인근 구두수선집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버스 안내판은 공사 기간 중 다른 곳으로 임시로 옮겼다가 공사가 끝나면 원 위치로 돌려놓는데도 이 구두방 주인은 버스 안내판이 옮겨진 뒤 매상이 떨어졌다며 새벽에 김 부장에게 전화해 ‘너 죽인다’고 협박했다. 김 부장은 “음료수도 사다주고 한달간 설득했다”고 떠올렸다.
국회의 ‘갑질’은 더 심했다. 9호선 공사 구간이 여의도 국회 밑을 지나야하는데, 국회 사무처는 뚝방길로 우회하라며 고압적으로 나왔다. 시 고위 공직자까지 ‘어떻게 싸가지 없이 국회 땅을 지나가느냐’는 식의 인격모독 수준의 말을 들어야했다. 김 부장은 “(공사 중)잔디에 기름이 묻었다고 사무관이 욕을 하더라”며 “과업이 다 마무리된 뒤에는 ‘내가 다시는 여의도에선 오줌도 안 눈다’고 했다”고 정색하며 말했다.
▶20년간 말뚝 박은 일, 열정과 보람이 이끌어=도기본 공무원들의 철도 열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휴일도 반납하고, 새벽 공사 때는 잠을 하루 2~3시간 밖에 자지 못할 때도 허다하다. 백년대계의 한 페이지의 한 줄에조차 이름을 남기지 못해도 개통 뒤 주민으로부터 “감사하다” “수고했다”는 인사말이면 족하다.
김 부장은 “사실 제 의지와 관계없이 이 일을 시작해 19년 9개월을 근무했다. 그런데 철도 기술이 발전하는 게 매력적이더라”며 “집에 늦게 들어가니 아들이 ‘아버지가 지하철에 미쳤다’는 소리를 하더라”고 했다. 그는 “토목 사업 중 최고 난제가 지하철 사업이다. 매번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불안하다. 내가 하나라도 실수하면 조직의 파장,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클 지 고민하고 긴장한다”며 안전사고 없이 완벽한 품질을 만들기 위해 전 조직원이 다같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4월 도시철도 50년 행사 때는 정말 보람찼다고 했다. 도시철도 분야별 건설기술 노하우, 기술발전, 개정 법령, 각종 매뉴얼을 집대성한 ‘도시철도 50년 기술서적’(이론과 실무)을 2년 만에 11권으로 완간해서다. 이 서적은 국회도서관과 다른 지자체 등 공공목적으로 1400부가 전달됐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