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증권부에 배치됐을 때 일이다. 아버지 전화가 왔다. 퇴근 후 만나자는 거다. 여느 가족처럼 결혼 후 적당히 본가와는 소원해진 터. 종일 신경 쓰였던 기억이 난다. 평소 무뚝뚝하던 분이 실로 간만에 한마디 하셨다. “주식 절대 하지 말아라.”
몰래 투자했고, 실패했고, 쉬쉬했고, 들켰고. 한 촌수만 건너면 다들 하나씩 있는 집안 사연. 그 이후로 증권가는 쳐다도 안 보신 본인으로선 하루라도 빨리 아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게다. 헛웃음이 나왔다. 헤어질 때 기어이 한마디 더 하셨다. “주식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증권부 배치 초반 때다. 대학 동창모임. 질문이 쏟아졌다. 요는, “어디 투자하면 되느냐”다. 알 수가 있나. 알아도 말할 수 있나. 우회하며 이런저런 ‘썰’을 풀다 보면 술자리는 루즈해진다. 누구나 아는 그런 기업은 관심도 없다. 생소한 기업 이름이 나올수록 술자리는 후끈하다. 곧 서로의 포트폴리오를 술안주 삼아 영웅담을 늘어놓는다.
누구는 절대 사지 말라 하고, 누구는 거두절미 ‘크게 먹을’ 종목만 내놓으라 한다. 필자로선 정반대의 요구를 동시다발적으로 들은 셈인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둘은 묘하게 닮았다. 깔린 전제가 같기 때문이다. ‘투자는 한 방.’ 한 방에 잃는 게 투자이니 쳐다도 보지 말라 하고, 한 방에 버는 게 투자이니 종목만 내놓으라 한다.
최근 바이오주가 연일 지면에 오르내린다. 바이오주야말로 한국 투자 문화의 상징 격이다. 한 벤처캐피탈(VC)업계 관계자는 “한국 시장 상장에 눈독 들이는 해외 바이오기업이 많다”고 귀띔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만큼 바이오기업 가치평가에 호의적인 나라도 찾기 어렵다는 이유다.
바이오주 투자 핵심은 결국 신약인데, 신약은 1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모든 임상 단계를 거쳐 최종 성공하는 신약은 10%도 채 미치지 못한다. 눈에 잡힌 실적이 아닌, 성공 확률에 투자하는 셈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코스닥은 물론, ‘양성학교’ 격인 코넥스 시장에서도 전체 기업의 56%가 바이오주다. VC업계에서 가장 기업 가치 판단에 애를 먹는 업종이 바이오다. 하물며 일단 개미는 오죽할까. 그럼에도, 바이오주엔 국내 개인투자자가 몰린다. 결국, 한 방이다.
최근 방한한 존 데이비스 S&P 다우존스 ETP부문 글로벌 대표의 평가를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ETF 시장에서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점유율은 1.3%에 불과한데 한국은 16.5%에 이르는 현실을 비교하며, “복잡한 상품이 이처럼 빠르게 수용되는 게 놀랍다”고 표현했다. 표현은 ‘놀랍다’이지만, 행간은 ‘이상하다’라고 읽어야 맞다. DLF 사태 때에도 글로벌 금융권에선 의아해했다. 해외에선 개인에게 팔지도 개인이 사지도 않는 금리 연계식의 고위험군 파생상품이 한국에선 사회적 문제로까지 불거진 탓이다.
‘투자는 한 방’이란 전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한국 투자 문화의 성장은 요원하다. 초저금리 시대엔 더 그렇다. 은행도 부동산도 불안한 내 돈을 어떻게 지키느냐. 투자가 가진 걸 더 갖는 수단이 아닌, 가진 걸 잃지 않으려는 수단이 될 시대다. 투자를 터부시하거나, 투자를 신격화하거나. 둘 다 우리를 발목 잡는 ‘한 방’이다.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