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2차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경찰은 이춘재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했으나 정작 경찰 용의선상에서는 빠졌던 것으로 확인돼 경찰 수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춘재는 화성 일대에서 태어났으며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에도 화성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형사와 프로파일러 등 7명을 이춘재가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로 보내 조사를 벌였다. 모방범죄로 밝혀진 8차 살인 사건을 제외한 모두 9차례 사건 가운데 5차 사건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알려진 지난 18일 첫 번째 조사 이후 하루 만이다. 1차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던 이춘재는 2차 조사에서도 자신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가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사건 수사는 DNA 대조 등 명백한 물적 증거 확보쪽으로 무게를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춘재의 주변인들을 상대로 한 보강 조사를 통해 이춘재의 범행 동기 등에 대한 수사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춘재가 무기수로 장기복역중인만큼 교도소 내에서 함께 지냈던 인물들에 대한 경찰 조사도 병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경찰이 과학 수사를 통해 이춘재를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했지만 미흡했던 과거 경찰 수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우선 이춘재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 살해 사건으로 수사받을 당시 청주 경찰이 화성 본가를 압수수색까지 하며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는 것이 알려졌다. 강제수사를 벌였지만 정작 ‘화성연쇄살인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선 경찰이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수사에서 이춘재를 잡지 못한 것은 청주 경찰과 화성 경찰이 서로 긴밀한 협조를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화성사건 수사본부에서 청주 경찰에 이춘재를 조사할 테니 그를 데려와 달라고 요청했지만 청주 경찰은 처제 강간살인 사건 수사를 이유로 “여기 수사가 우선이니 필요하면 직접 데려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화성사건 수사본부에선 이춘재에 대한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
이춘재가 화성 토박이였다는 점도 용의자 특정 이후 확인된 새로운 사실이다. 이춘재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재 화성시 진안동)다. 이춘재는 이곳에서 태어나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계속 살았다. 청주 이사 전까지 주소지를 몇차례 바꾼 기록이 있지만 모두 지금의 화성시 일대에서 주소지를 옮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200만명이 인원을 투입하고 용의자와 참고인으로 2만명이 넘게 조사를 했지만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리지 못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