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청구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가능’
1987년 1월 경기도 화성에서 5차 사건 현장을 살피는 경찰 [연합] |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33년만에 찾아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추가 처벌은 물론, 여죄를 추궁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피해 유가족들은 손해를 배상하라거나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8일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DNA를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교도소에 25년째 수감중인 50대 남성 A 씨를 특정했다. A씨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당시 20세)에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 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사건인 10차 사건은 1991년 4월 3일 밤 발생했다. 화성 동탄에서 69세 여성이 하의가 벗겨져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15년으로 2006년 4월 2일 만료됐다. 하지만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형사법 전문가인 김정철 변호사는 “수사는 공소를 제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강제로 수사를 한다면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했다. A씨가 10차 사건 이후 추가 범행을 벌였을 수도 있지만, 1994년부터 교도소에 수감중이었던 것으로 고려하면 여죄가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
김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공소를 제기하기 위해서 하는 수사가 아닌, 행정기관으로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라고 한다면 가능할 수는 있지만 강제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형사 사건을 주로 다루는 한문규 변호사는 “경찰이 교도소에 찾아 수사 접견을 신청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거절하면 마땅한 도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서 처벌을 했던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 5·18특별법을 제정해 공소시효를 극복한 바 있다. 이때도 다만 위헌논란이 있었다. ‘대통령 재임기간은 공소시효에서 제외된다’는 법리로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런 특수성이 없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정한 사건과 개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 제정은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위헌 소지가 높아 곤란하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다만 부장판사 출신 김상준 변호사는 외국의 입법례를 들어 “미국에서 20~40대 여성이 유아기때 성범죄 피해를 받은 사실을 뒤늦게 떠올리는 경우 각 주별로 입법을 해서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 시효가 다 끝난 것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해 형사 고소도 하고 민사 소송도 했던 사례가 있긴 하다”고 했다.
형사처벌과 민사소송은 별개이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는 10년 이내에 해야 하지만, 가해자와 가해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내에도 소송을 낼 수 있다.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한 18일을 기준으로 소송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소송을 내서 이기더라도 집행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 용의자가 90년대부터 교도소에 수감중인 상태로 재산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손해배상 소송을 내서 승소한다고 해도 실익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용의자의 가족들에게 청구하는 것도 힘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 A씨에 대해 추가 조사한 뒤 입건해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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