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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그놈’ 잡았다] 표창원 “아직도 안 믿겨. 꿈 같은 느낌”… 기소 어려워도 수사 필요
표창원 의원, 1990~1991년 화성 근무
“꿈같은 사건. 아직도 안믿겨”… 기소 어렵지만 수사 필요성 확인한 사안
표창원 국회의원. 표 의원은 1990년~1991년 화성에서 경찰로 근무했었다.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열패감과 자괴감을 느꼈던 사건”이라고 당시 사건을 기억했다. [사진=연합뉴스]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1980년~199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당시 경찰 신분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화성경찰서 기동대 소대장 등으로 1990년대 경찰에 근무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열패감과 자괴감을 느꼈었던 사건’이라고 술회했다.

표 의원은 19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아직도 믿기지는 않는다. DNA증거 때문에 개가를 올릴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지만, 현실감이 아직 오지 않고 있다”며 “한으로 남았던 사건이다. 저뿐만 아니라 수사에 참여했던 모든 경찰관들이 그랬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무리한 수사를 하다가 형사 처벌된 경찰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분도 있었다. 피해자 중에는 유족 분들도 있고 경찰도 있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꿈같은 느낌이다. 차분하게, 한달 정도, 조사가 필요하니까. 조금더 기다려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연인원 추산 경찰력이 200만명이 투입됐던 희대의 사건이다. 경찰 역사에는 ‘흑역사’로 기록돼 있다. 역대 가장 많은 경찰을 투입했지만 결국 범인을 잡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쇄살인은 1991년 4월에 일어났다. 이후 범인은 더이상의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잠적했다. 표 의원은 ‘열패감과 자괴감을 느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화성에서 근무했을 때가 1990년 7월부터 1991년 7월까지였다. 부임 첫해에는 정경대 소대장을했고, 이후엔 화성경찰서 기동대 소대장으로 있었다”며 “평상시 임무는 연쇄살인사건 현장 보존과 지역주민 여성분들의 안전귀가 그리고 검문 검색을 담당했다”며 “수사진과 같이 논의를 했었다. 특히 9차사건 발생당시에 제가 그곳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현장보존과 증거 보존 작업을 했었다. 검문검색 과정에는 지역주민들이 너무 오랜동안 (경찰 검문에) 시달리니까, 대원과 경찰들을 보면 거친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표 의원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 역할’을 했었던 윤모 용의자가 있었다. 그 친구를 검문검색하던중에 그의 부모님이 찾아와서 연락을 받고는 없어졌다”며 “형사진이 여관에서 (그를 다시 잡아) 조사를 했고 (본인이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고 범인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검증과정에서 시신의 위치를 못찾았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소회에 대해 “가슴에 안고 있었던 사건이다. 수사에 도움도 주지 못했고, 범인 꼬리도 못잡았고, 대대적인 경찰인력이 (살인을) 막아내지 못했고 또 발생했던 사안이다. 열패감과 자괴감 느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화성 사건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원인 중 하나에 화성연쇄살인사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성 사건이 본인에게 준 열패감 때문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설명이다. 표의원은 “1986년 화성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영국에서는 최초로 DNA를 개인식별에 적용할수 있다고 하는 기법이 데프릭스 박사에 의해서 공개됐다”며 “화성 사건 이후 데프릭스 박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화성 사건에 DNA 기법을 도입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이번에 화성 사건 범인을 특정한 것 역시 당시 증거물을 잘 보관했기 때문에 30년 이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성 사건 당시에는 유전자 증폭기술과 장비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대신에 현장 수거 증거물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됐다. 강력 사건에 대한 증거물은 영구 보존 해야 된다. 공소시효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나면, 기소 못하는 사건이다. 화성 사건도 다행스럽게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대조할수 있는 증거물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우리나라는 잘못된 수사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사는 기소의 전단계라는 개념이다. ‘수사는 기소의 부속작용’이라고 생각해왔다. 기소를 못할바엔 아예 수사를 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관행처럼 자리잡고 있었고 그런 것을 뒷받침하는 학설도 있었다”며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기소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의심 받는 사람의 누명 벗겨주는 것이 수사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방안 찾는 것도 수사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지역 사회, 국가 사회를 위하고 범죄 사건의 재발을 막으며 피해를 회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수사”라고 강조했다.

표 의원은 “공소 시효 때문에 기소를 못하는 것은 수사 목적 중 단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내고, 피해자들의 원한 달랠 수 있다. 그래서 유가족의 충격과 아픔 덜어주는 것도 수사의 목적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저야 무게가 덜하긴 했지만, 피해자와 현장 보호에 나서셨던 분들은,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아닌 분이 없었다. 포천 여중생 사건도 담당 수사관이 자살했다”며 “(경찰이) 강인하기도 하고.실제로 강인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범인을 못잡는 안타까움 이런 감정 상태들은 장기간 내재하게 된다. 분노 감정을 해소 못해 술에 의존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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