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업건민 뿐 아니라 신약 개발 등 약업보국도 앞장
UN 이회장 호 고촌상 제정…장학금 누계 436억원
홀로그램으로 부활, 도움받은 예술가 학생 퍼포먼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부산피란정부는 전국 8도에서 모여든 피란민의 음식 배급 5분전에 확성기로 ‘개(開)판 5분전’임을 알린다.
많은 피란민들은 배급 장소로 앞다퉈 몰려들지만, 소(牛) 막사, 심지어 공동묘지를 개조하거나 산 중턱을 깎아 지은 임시 판자촌의 열악한 위생 환경 속에서 질병에 시달리던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나아가기도, 앞자리에 서기도 버겁다.
서울에서 제약사업을 하다 피란 온 고촌 이종근은 이런 장면을 목도한다. 이종근(1919~1993) 종근당 회장은 위험을 무릅쓴 채 공산 치하의 서울 공장에 잠입, 원료를 갖고 다시 부산에 가, 외상 치료 연고, 회충약, 빈대약을 만들어 피란민들에게 제공했다. 그의 제약업 경영철학 두 축 중에서 약업건민(健民) 정신을 실천한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곳은 2019년 지금, 우암동(소막마을) 피란수도유적,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등 가슴 따뜻한 문화관광지로서,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과 연민의 정을 받고 있다.
1919년 9월9일 출생해 올해 탄신100주년이 된 고촌은 제약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는 약업보국(輔國)을 위해 무수한 족적을 남겼다.
제약 생산 현장을 일일이 점검하는 고 이종근 종근당 회장 |
1968년 정부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FDA 승인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고, 우리 약은 우리 스스로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일찍이 1972년 국내 제약기업 첫 중앙연구소(현 효종연구소)를 만들었다.
1974년 국내 최초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을 준공한데 이어, 1980년 자체 기술로 세계에서 4번째로 항결핵제를 개발했다.
1993년 고촌을 떠나 보낸 뒤 그의 뜻을 이어받은 종근당 연구진은 2003년 항암제 신약 캄토벨과 2013년 당뇨 신약 듀비에를 탄생시켰다. 지난해에만 종근당의 신약 기술수출액이 8172억원에 달했다.
이종근 회장의 또다른 꿈 장학사업은 고촌재단을 통해 46년간 436억원 규모로 펼쳐져 가난한 청년들에게 학업의 꿈을 활짝 열어주었다.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했다.
고촌의 결핵퇴치 의지를 높이 평가한 UN 산하 결핵퇴치 국제협력사업단(Stop TB Partnership)은 2005년 국제상 '고촌상(Kochon Prize)'이 제정하기도 했다.
종근당은 고촌의 100번째 생일인 9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이장한 회장을 비롯해 종근당과 가족사 임직원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은 임직원들이 직접 낭독한 '우리의 기원' 특별영상과 종근당 전직 임직원, 종근당고촌재단 장학생 등 10명이 이종근 회장과의 일화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회고영상 상영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로 이종근 회장의 모습과 음성을 복원한 홀로그램을 통해 유가족과 임직원들에게 감사인사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해 보는 이를 뭉클하게 했다. 종근당의 지원을 받는 신진작가 10명은 특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27일에는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신약개발 심포지엄’도 열렸다. 국내외 제약인들이 모여 그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자는 뜻을 담은 행사였다.
이장한 회장은 “평생 제약업에 헌신한 이종근 회장님의 삶의 의미를 기리면서 글로벌 혁신 신약개발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졌고, 김성곤 효종연구소장은 퇴행성 신경질환과 심방세동,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 등 고촌의 약업보국의 뜻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음을 전했다.
종근당은 현재 투명한 지주회사, 종근당홀딩스 중심체제로 바뀌었으면, 종근당 뿐 만 아니라 종근당 바이오, 경보제약, 종근당건강 등 계열사가 영역을 나누어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김영주 대표이사는 올해를 글로벌 영토확장 본격화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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