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제 도입되면 관할 분쟁 ‘국가경찰‘ vs ‘자치경찰’ 구도로 늘어날 수도
전문가들 “112 상황실에 함께 근무 중재안 불구 관할 분쟁 계속 전망”
부산 중부서와 서부서 사이 다툼이 생긴 지역 관련 지도. [자료=경찰관계자] |
[헤럴드경제=김성우·정세희 기자] 경찰 조직 내 관할 분쟁이 여전하다. 사안 처리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어느 경찰서가 책임이 더 크냐는 것이 분쟁의 핵심이다. 자치경찰제 시행을 목전에 둔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같은 조직인 ‘국가경찰’로 묶여 있어도 관할 분쟁이 생기는는데, 경찰이 두조직(국가경찰vs자치경찰)으로 나뉘게 될 경우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것 아니냐는 우려다. 정부는 서울과 세종 등에 자치경찰제를 올해부터 시행하고, 오는 2021년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부산, 중부서 vs 서부서= 지난 7월 부산 중부경찰서와 서부경찰서 사이 ‘관할분쟁’이 생겼다. 시작은 단순 ‘몰카 촬영 사건’이었다. 문제는 몰카 촬영 장소인 화장실의 위치였다. 사건이 발생한 화장실의 행정구역상 주소지는 서부서(충무동) 관할이었지만, 가장 가까운 경찰서는 중부서였다. 경찰이 관할 구역을 나누는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애매했다. 관할을 나눈 규정은 크게 두가지다.
행정 지번에 따라 사건을 처리토록 하는 ‘조직 및 사무분장 규칙’의 경우 ‘화장실 몰카’ 사건은 서부서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 이에 비해 ‘관서간 경계관할 규정’에 따르면 ‘가까운 경찰서’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럴 경우 중부서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 사건 발생 화장실에서 직선거리로 중부서는 1.6km, 서부서는 1.9km 떨어져 있다.
분쟁이 심해지자 중부서와 서부서는 부산지방경찰청에 분쟁 중재를 요청했고, 부산경찰청은 경찰청 본청에 자문을 구했다. 부산경찰청 측은 화장실 몰카 사건의 경우 중부서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시민의 편의가 우선돼야 하는 상황이기에, 주소지는 부산서구더라도 사건처리는 현장에서 가까운 중부서에 맡기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할 문제는 부산경찰청의 중재로 마무리됐지만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절차에선 또다른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사건 범죄 처리는 경찰이 담당하더라도, 이후 폐쇄회로(CC)TV 설치나 순찰활동 등 몰카범죄 예방 활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일선 관공서와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리가 가까워 중부서가 사건을 맡았지만, 범죄 예방을 위해선 서부서가 사건을 맡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여전히 유효하다.
경찰 관할 분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중앙대 재학생 두명이 한강대교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곳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동작구 노량진동이었지만 출동한 경찰관은 용산경찰서 소속이었다. 서울경찰청 훈령 ‘경찰서 관할 책임에 관한 규칙’은 한강 교량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는 북측 지역 경찰서가 맡는다. 경찰 차량으로 사건 지점 도달에 필요한 시간은 용산경찰서가 10분, 동작경찰서는 1분 가량 소요된다.
▶文 대통령 ‘공약’ 자치경찰제 코앞=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전인 지난 2017년 4월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취임 후 자치경찰제는 탄력을 받고 있다. 현재는 제주에서만 시행중인 자치경찰제를 올해 안에 서울과 세종 등 전국 4곳에서 확대 적용키로 했다. 각 지방경찰은 제도 시행을 위한 조직을 출범시켰고, 국회는 ‘패스스트랙’ 안건 중 하나로 자치경찰제 도입 법안도 상정해둔 상태다. 정부는 오는 2021년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대키로 했다.
자치경찰제의 핵심은 경찰 조직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경찰력을 직접 관리하는 국가경찰제 대신 지역 경찰의 관리 감독 권한을 지방자치단체가 갖게 하는 것이 자치경찰제의 핵심이다. 문제는 현행 국가경찰제 내에서도 관할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는데 자치경찰제로 제도가 바뀔 경우 업무 관할을 두고선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의 분쟁이 더 많아질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발표된 자치경찰제 업무 분장에 따르면 가정폭력, 학교 폭력, 성폭력 등 생활 주변 범죄는 자치경찰이, 살인과 강도 등 중대 범죄는 국가 경찰이 담당을 하게 된다. 문제는 경계가 애매한 사건의 경우 또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협동수사가 필요한 경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냐는 우려다. 가정 폭력으로 살인이 벌어졌거나 연쇄 성폭력 등 강력범죄의 경우엔 수사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등을 두고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네탓 공방’을 주고받을 개연성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112상황실에서 함께 일을 하더라도 서로 업무를 미루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자치경찰제를 시행하는 미국에서도 관할 구역을 놓고 서로 미루기가 심각하다”며 “지자체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국민들에게도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가경찰제 하에서도 직접 뛰어들어 고생해야하는 사건은 맡지 않으려 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는 수사는 서로 맡으려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면 구체적 사건을 두고 유권 해석 의뢰가 더 늘어날 것이다.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zzz@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