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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강남 집값과 가상화폐...21세기 계급과 혁명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강남 집값과 가상화폐의 본질은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임금상승은 제한됐다. 위기극복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중앙은행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시중에 풀었다. 하지만 이 돈은 생산활동에 쓰이기 보다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집값(중위가격)은 20.85%, 코스피는 22.53% 올랐다. 같은 기간 임금상승률은 12.7%을 크게 웃돈다. 노동보다 자산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특히 부자들이 선호하는 비싼 자산이 더 올랐다. 강남4구는 41%, 코스피 상위 50종목은 평균 25.5% 상승했다. 전체적인 임금상승률은 정체됐지만, 최상위 임금근로자 즉 관리자 임금은 42.9%나 높아졌다. 국세청 기준 1억원 이상 연봉자는 41만5000명에서 64만3000명으로 55% 급증했다.

임금상승률이 자산가격 상승율을 크게 밑도는 상황에서 탈출구는 ‘빚’이다. 빚이라도 내서 자산가격 상승에 일단 편승할 수 있다면 향후 자산가격 상승분으로 빚 부담을 털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저수준까지 떨어진 금리는 차입비용을 낮춰 빚 수요를 더욱 부추겼다. 부동산 갭(gap) 투자가 인기를 끌었고, 돈을 빌려 코스닥에 투자하는 이들이 급증했디.


결국 완화적 통화정책이 현재 자산가격 상승의 근본원인이다. 시중에 풀린 돈이 생산과 혁신으로 흐르지 못하고 자산시장으로만 쏠린 결과가 양극화다. 특정 계급에 유리한 통화정책, 경제정책이 된 셈이다.

가상화폐 시장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양적완화 기간 거의 유일하게 ‘생산적’ 성과를 모바일 사회가 바탕이 됐다. 복잡한 분석도 필요 없었다. 부동산은 억 단위, 코스닥도 수백 만원의 투자금이 필요하지만, 가상화폐는 10만원, 100만원이면 족했다. 지난 8년간 자산가격 상승을 바라보기만 했던 소외된 ‘계급’들도 자산가격 상승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제도권의 ‘거품’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소수의 권력자가 아닌 ‘집단지성’의 승리라는 통쾌함이 공유됐다. 완화적 통화정책에서 소외된 계급들의 역습이 결국 가상화폐 열풍의 단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강남 집값을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통화팽창에 따른 실물자산 가격 상승은 너무나 자본주의적이다. 적어도 자산가격 상승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적 접근으로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비자본주의적인 보유세를 대폭 올리는 방법이 인위적 대책으로 유일할 지 모른다.

가상화폐 시장은 어찌됐건 상당한 혁신의 단초가 될 것은 분명하다. 블록체인 기술은 모바일 사회로의변화에 상당한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상통화가 곧 등장할 수도 있다. 이미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가상통화 발권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금융거래 대부분이 디지털 과정으로 처리되고 있다. 기존의 실물화폐를 대신할 가상통화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가상화폐가, ‘통화’로서 인정받을 지는 미지수다. 가상화폐 투자로 번 돈으로 강남 아파트를 살 수는 있다면 ‘자산’이다. 강남 아파트를 판 돈으로 가상화폐를 살 수 있어야 ‘통화’가 아닐까.

만에하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처럼 철저하게 ‘민간’이 주도하는 가상화폐가 통화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다면 21세기 들어 가장 큰 혁명이 될 수 있다. 역사상 세계의 패권은 통화로 발현됐고, 세계질서의 변화가 기축통화의 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계급간 경제격차 확대라는 양극화는 모바일 기술을 만나 경제 혁명의 에너지를 높이고 있다. 드러난 현실에 낡은 잣대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현상의 근본과 경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이 필요할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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