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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키니는 분열 아닌 통합의 복장” 부르키니 최초 발명가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2000년대 초반 어느날 호주 시드니 교외의 뱅크스타운. 레바논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이곳으로 이민 온 아헤다 자네티는 조카가 네트볼(여성용 농구)을 하는 것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조카가 이슬람 전통 의상 위에 팀 유니폼을 겹쳐 입고 있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카가 토마토 같아 보였다”고 말한 그녀는 이때 느낀 불편함 때문에 몇 년 뒤 ‘부르키니’를 발명하게 된다.

자네티는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슬람의 상징인 부르카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가 호주의 라이프스타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최근 유럽에 일고 있는 부르키니 논란을 에둘러 비판했다.

부르키니가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과정은, 그 복장이 당초 인종 간의 분열과 대립이 아닌 통합을 겨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네티가 처음에 만든 것은 부르키니가 아닌 ‘히주드’(hijood)였다. 무슬림 여성이 머리와 가슴 일부를 가리는 데 쓰는 전통 복장인 히잡과 서양식 복장인 후드를 결합한 것으로, 무슬림 여성도 운동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발했다.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자네티는 2004년 ‘아히다’(www.ahiida.com)라는 이름의 업체를 설립하고 정식으로 사업에 착수했다.

자네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르키니 개발에도 착수했다. 우연히 부르카를 입고 물에서 노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한 글을 읽다가 무슬림 여성을 위한 수영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신체를 노출할 수 없는 이슬람의 관습을 지켜 전신을 가릴 수 있도록 하되, 부르카와는 달리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도록 했다. 전통과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의 조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바보같이 들리기는 하지만 이슬람식 투피스 비키니에요. 내가 만든 이름일 뿐 다른 것은 의미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부르키니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07년 해안 안전요원의 유니폼으로 쓰이면서부터다. 당시는 호주 내에서 무슬림과 백인 간의 갈등이 높아져 이들을 통합하고, 무슬림도 호주 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다. 이에 호주의 비영리 해안 안전 단체가 무슬림 여성을 안전요원으로 채용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문제는 안전요원이 입을 복장이 마땅치 않아 지원자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단체는 아히다 측에 안전요원이 입을만한 수영복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네티는 이 요청에 기존 부르키니의 디자인을 안전요원에 맞도록 좀 더 몸에 달라붙고 좀 더 짧게 개조했다. 
[사진=아히다에서 판매하는 부르키니 제품. 출처는 아히다 홈페이지(www.ahiida.com)]

그런데 이게 즉각 히트를 쳤다. 적합한 옷이 없어서 물놀이를 하지 못했던 무슬림 여성들은 부르키니가 가져다준 자유에 열광했다. 무슬림만이 아니다. 자네티는 “우리는 유대인, 힌두인, 기독교인, 몰몬교도 등 다양한 신체적 이슈에 처해 있는 여성들에게 부르키니를 판다”고 말했다. 부르키니는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70만벌이 이상이 판매됐으며, 마크앤스펜서 같은 대형 유통업체도 유사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아히다는 “부르키니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신뢰를 가져다줬다고 생각한다”며 “(부르키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이전에는 매우 긍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부르키니 안에 폭탄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워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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