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전통 그릇문화 안타까워”
“그릇은 그릇일 뿐이에요. 장식품도 감상의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릇을 만들 때 단 한번도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생활도예가 이윤신(58) ‘이도’ 대표의 그릇에 대한 철학은 강고하다. 그릇은 음식을 담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그릇을 만들 때 용도가 먼저다. 비빔밥용인지 샐러드를 담을 것인지 간장그릇인지를 먼저 따진다.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에서 한식을 담아내는 그릇을 선보이고 있는 이씨는 자신이 만든 그릇을 그냥 ‘물건’이라 불렀다.
그런 이 씨가 이번에는 그릇에 자신의 삶을 담아냈다. ‘이윤신의 그릇 이야기’(문학동네)로 그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도발적인 그릇과 함께 한 인생을 맛갈스럽게 차렸다. 그는 행복은 화려한 밥상이 아닌 귀하게 차린 밥상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무엇을 먹느냐 못지않게 어디에 담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워졌는데 정작 식문화에서 그릇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래 해왔어요.”
그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저마다 전통적인 그릇을 쓰고 있는데 산업화되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그릇 문화가 다 사라지고 스테인레스와 플라스틱 그릇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걸 안타까워했다. 쓰기 편하다고 냉장고에서 락앤락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먹고 다시 냉장고로 직행하는 건 아니다 싶다. “불편하더라도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그릇을 대하고 바르게 음식을 먹을 때 소통도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남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그런 정성스런 태도와 시간이 품격있는 생활이죠.”
그릇이야기는 오래 꿈꿔왔지만 막상 책을 쓰는 게 쉽지는 않았다. 바쁜 일과중 짬짬이 쓰다보니 3년이나 걸렸다.
28편의 산문으로 이뤄진 책은 대학졸업 후 결혼과 함께 일본에 유학한 이야기, 일본인들의 도자를 대하는 예의와 태도, 설거지하는 시간, 술상문화 등 단상들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또 안양 반지하 공방에서 시작해 25년 넘게 그릇을 만들며 깨달은 삶의 이치도 곳곳에 녹아있다.
초창기 무엇보다 ‘나만의 것’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 특유의 조형감도 그렇지만 음식이 담기는 부분은 유약처리를, 나머지 부분은 점토 그대로 보이게 하는 기법은 만들고 버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온 결과였다.
지금은 국내 생활도예에서 규모로는 손꼽을 정도로 성장한 이도는 최근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여주 공장으로 확장이전했다. 중국과 미국에 그릇과 음식을 함께 선보이는 이도 다이닝이 진출했으며, 오는 9월 파리에선 개인전과 함께 레스토랑이 진출한다.
그는 핸드메이드 도예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우리 그릇의 경쟁력으로 공간과의 조화를 꼽았다. “일본 도자기는 일본색이 강하기 때문에 공간과 식탁이 다른 느낌이 있어요. 우리 그릇은 식탁에 올랐을 때 공간과 잘 어울리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