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를 찾았다. 마침 21일 개관 1주년이 되는 DDP는 새로운 디자인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헤럴드디자인포럼 등 세계적인 포럼과 전시회도 열린다. 찾아간 때는 전세계 유명가구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DDP내 곳곳에 전시된 각종 가구, 특히 진기한 의자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핀란드 디자이너인 ‘이에로 아르니오’의 작품은 큰 인상을 남겼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에 그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겼다. 영화 ‘맨인블랙’에도 나와 유명해진 공모양의 둥근 ‘볼 의자’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의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고 한다. “좌석이 꼭 의자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 의자라는 틀보다는 앉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틀을 벗어나 본질에 접근하면 상상력은 커진다. 이에로 아르니오는 “의자가 꼭 땅위에 놓일 필요가 없다”며 물에 뜨는 ‘토마토 의자’도 만들었다.
실제 여러 의자에 앉아보니 ‘아~!’하는 색다름이 있었다. 의자안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의자의 틀을 벗어나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은 듯하다.
새로운 시각의 접근은 디자인산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에어비앤비(Airbnb)는 숙박에 대한 접근을 달리했다. 에어비앤비는 남아도는 집을 여행객에게 제공하는 공유형 서비스로 대박난 사례다. 이에로 아르니오식으로 해석하면 “자는 곳이 굳이 호텔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22조원으로 세계적 호텔브랜드인 하얏트를 이미 뛰어넘었다. 에어비앤비가 뜨자 이번엔 빈 사무실을 임대해주는 ‘위워크(WeWork)’가 등장해 부동산 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창조적 모방이다. 기업가치는 5조원이 넘는다. 차량공유 앱 우버(Uber) 역시 주목할 사례다.
이처럼 잠자리와 사무실, 차를 연결해주는 것만으로 에어비앤비(브라이언 체스키), 위워크(아담 노이만), 우버(트래비스 칼라닉)의 창업자들은 슈퍼리치의 반열에 올랐다. 전통 강자들과 같은 범주에서 비교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자명해진다. 해외여행 시 에어비앤비를 고려하고 있다면 이미 에어비앤비는 호텔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퇴근할 때 택시 대신 우버를 찾는다면 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우리 눈앞에 매일 벌어지고 있다. 책이나 신발 등 물건을 살 때 아마존, 알리바바 쇼핑몰부터 클릭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롤렉스의 경쟁자가 스마트워치가 될 수도 있다.
업종을 막론하고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무섭다. 빠르다. 그리고 스마트하다. 이들을 불러모으고, 그 제품이나 서비스, 플랫폼 안에 오래오래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잡으면 예전보다 훨씬 빨리 성공하고 놓치면 눈 깜짝할 새 무너진다. 세상과 소비자를 읽는 통찰력과 시각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실감이 안 난다면 이에로 아르니오가 만든 의자에 딱 한번만 앉아보길 권한다.
happyd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