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밑돌면서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많다.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수출주도형 경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무역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 대외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수 기반을 강화하고 경제효율화를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활력 잃은 한국경제, 세계 경제성장률도 하회하나=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 성장률을 크게 웃돌면서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했다. 1, 2차 오일쇼크와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등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한국은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2배 이상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그 격차가 현격히 줄어들었고, 이젠 세계경제 성장률을 밑돌면서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지난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3.3%로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같았다.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선진국 평균 1.8%보다는 높지만, 신흥국과 개도국 평균 4.4%에 비해서는 1.1%포인트 낮은 것이다.
올해는 한국이 세계경제 성장률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늘어나는 가계부채 부담으로 민간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대외 경제여건 악화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세계평균을 밑돌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IMF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10월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낮춘 3.5%로 제시했다. 이는 IMF가 제시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 3.7%나 정부가 작년말 제시한 3.8%보다 낮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국내외 민간기관의 전망은 다르다. 한은은 지난달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3.9%에서 3.4%로 대폭 낮추었고, 글로벌 금융그룹인 HSBC는 3.1%, 일본 노무라는 3.0%를 제시했다.
어떤 전망이 맞을지는 두고봐야 하지만, 세계경제를 빠르게 추월하던 한국경제가 이젠 서서히 뒤쳐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의 한계, 디플레이션 가능성=정부에서는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화두로 기업들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규제완화와 각종 투자유인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대외환경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몸을 사리고 있다. 가계는 크게 늘어난 부채부담과 일자리, 미래에 대한 불안에 소비를 줄이고 있다. 정부도 세수 부족으로 지속적인 재정투입에 한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기업과 가계, 정부 등 경제의 3대 주체가 모두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장기불황에 이은 디플레이션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1990년대 초반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나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이 디플레 국면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디플레의 전단계인 경기 부진 속에 물가 상승률이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국면으로 볼 수 있다며 우려한다.
지난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로 OECD 평균 1.7%는 물론 G7 평균인 1.6%를 밑돈 것은, 이런 측면에서 불길한 징조다. 특히 수요가 부진한 상태에서 저물가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이를 디플레의 전조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더욱이 올해는 대외여건이 불확실하다. 러시아 등 일부 산유국의 경제위기,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양적완화, 동유럽과 북유럽, 신흥국들의 잇따른 금리인하, 이로 인한 글로벌 환율전쟁 등의 파고가 매섭게 몰아칠 형국이다. 여기에 올 하반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세계경제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전의 미국 금리인상기에도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규모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대외의존도가 높아 불안이 더 심화될 수 있다. 현재 한국 경제의 위기는 지난 40년 동안 추구해온 수출주도형 경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인 만큼 경제의 체질변화가 생존의 필수요소가 됐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은 “수출과 수입을 합한 한국의 대외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으면서 GDP의 100%를 상회해 대외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며 “중산층과 서민의 소비여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조기 퇴직과 일자리 위협이 상시화하면서 노후와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개인들이 소비를 축소하고 이것이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며 “경제활성화와 잠재성장률 제고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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