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직장인 A(38)씨는 아내 몰래 돈 쓸 일이 생기면 안방에 걸린 결혼사진 액자 뒤를 기웃거린다. 이곳이 수년 전부터 A씨의 비상금이 숨겨진 ‘비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5~6년 전만 해도 부피가 작으면서도 가치가 큰 10만 원권 자기앞수표가 액자 뒤에 숨겨졌지만, 최근에는 5만 원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0만 원권 수표는 이서(裏書)의 번거로움은 물론, 택시비나 담배 등 푼돈을 쓸 때 결제를 거부당하기도 하지만, 5만 원권은 그런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한때 직장인들의 비상금 수단으로 애용되던 10만 원권 자기앞수표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2009년 6월 5만 원권이 등장한 이후 빠른 속도로 10만 원권 수표 자리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0만 원권 수표의 사용량이 7년째 급감, 4분의 1토막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만 원권 수표의 하루 평균 결제규모는 94만건(금액으로 940억원)으로, 112만9000건(1129억원)을 기록한 2013년보다 16.7%나 줄었다.
이는 10만 원권 수표 사용이 정점을 찍었던 지난 2007년(406만2000건)에 비하면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0만 원권 수표의 몰락은 5만 원권 발행과 함께 시작됐다. 10만 원권 수표의 하루 평균 결제건수는 신용카드 사용 확산과 금융위기 등의 영향을 받은 지난 2008년(374만2000건)까지만 해도 전년보다 7.9% 줄어드는 데 그치는 등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다.
하지만 5만원권의 발행이 시작된 지난 2009년부터는 사용량이 대폭 줄었다. 2009년에는 하루평균 결제 건수가 307만3000건을 기록, 전년보다 17.9%나 줄면서 감소폭이 배 이상 커졌다. 이어 지난 2010년(247만7000건)에는 19.4%나 줄었고, 2011년(199만건)에는 19.7%, 2012년(146만6천건)에는 26.3%, 2013년에는 23.0% 등 일평균 결제건수가 5만원권 발행 이후 매년 20% 내외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5만원권은 지난 2009년 이후 대량 공급되며 보급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2014년 말 현재 시중에 풀린 5만 원권은 총 52조34억원이다. 이는 시중에 풀린 전체 화폐(기념주화 제외)액의 69.5%에 달하는 규모다. 국민 1인당 20.6장의 5만 원권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0만 원권 자기앞수표의 이용이 감소하는 이유는 신용카드 등 지급 결제수단이 다양화된 가운데 5만 원권이 대량 보급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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