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져라, 허물어져라. 그리하면 당신이 있는 곳에 수많은 들꽃이 피어나리니.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은 바윗돌처럼 차디찼다. 다르게 해 보아라.
항복하라. - 잘랄루딘 루미-
이 ‘시’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와 “새로움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꽃을 피울 수 없다”라는 의미다.
새해가 되어 책장정리를 하던 중 필자는 지금까지 집필한 두 권의 자서전을 꺼내 보았다. 평소 실수가 없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 탓에 과거 글 속에 오류는 없었는지 문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4년 출판한 ‘내 삶은 무대 뒤에서 이루어졌다’ 166페이지의 내용에 약간의 오보가 있음을 찾아냈다.
바로 1974년 현재 서울시향의 지휘자 정명훈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했다”라는 내용인데, 당시 경연에서 모스크바 태생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고가 1위로, 정명훈이 2위로 입상했음을 바로 잡는다.
쟁쟁한 서양 음악가들을 제치고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온 피아니스트가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것은 대단히 감동적인 일이다. 필자는 자랑스런 한국의 천재 피아니스트를 위해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거리의 환영인파는 필자의 뇌리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그렇게 정명훈은 당대의 가장 실력있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으며,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됐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향 사태로 연일 지면에 떠오르는 뉴스를 보며, 혹여 그가 지금껏 쌓아온 실력과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부당한 방법이나 도덕적 측면의 과오가 있었다면 그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예술가’로서 그의 업적과 희생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최근에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선임문제로 문화예술계가 또다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예술감독의 자질과 경력을 문제 삼아 일부 음악인들은 사퇴를 주장했고, 당사자는 “지켜보지 않고 평가를 하는데 유감스럽다”며 하소연으로 언론에 호소하고 있다. 상황은 누구 말이 옳고 그른 지 논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문화예술의 입지가 전무하던 시절, 필자는 누구 하나 인정해 주지 않아도 ‘그들을 향한 부단한 노력’에 늘 앞장섰음을 감히 말할 수 있다. 평생 스스로 문화예술을 ‘짝사랑’했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 서운할 때도 있지만, 진심을 다해 응원했던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까지 든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은 이제 과도기를 넘어 만개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도 역사는 운명처럼 필요한 인재들을 끌어들여 뛰어난 예술을 뿌리내리게 했다. 이제 이들을 반짝이는 별들로 응당 있어야 할 자리로 세워주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개인사든 세계사든 역사의 존엄성을 결코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실히 길을 걸어온 그들을 지켜봐주고 조용히 응원해 줘야 한다.
‘시대의 문화예술 정신’을 피워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리멸렬한 민족의 예술사에 숭고한 정신으로 남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