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명량’이라는 영화에 17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한 두 편이 아닐진대 역대 최고의 흥행을 거둔 것은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갈망 때문이 아닌가싶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니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12월 ‘땅콩회항’사건을 일으킨 조현아 부사장의 리더십이 너무 대조되어 비교를 해 보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최고자리에 있는 리더이고, 조현아는 재벌 3세로서 대한항공 사의 실세 리더다. 두 리더가 가진 공통점은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두 리더십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도덕형 리더십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헌신하고 배려하는 리더십이다. 자신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리더십이다. 그 결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은 자발적인 복종을 얻게 된다.
반면, 조현아 부사장은 조직이 부여한 권력을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리더십이다. 상대방의 입장보다 자신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리더십이다. 내가 가진 힘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흔들 수 있다고 보는 리더십이다. 그 결과 그녀의 리더십은 비자발적인 복종을 가져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은 신자들에게 강제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뜻을 어기면 심적 부담은 남겠지만 보복이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에 반면, 조현아 부사장의 리더십은 강제적 명령을 동반한다. “이 비행기 당장 세워”라는 그녀의 명령에 승무원과 사무장은 무릎을 꿇고 기장은 비행기를 돌렸다. 왜냐하면 이를 거부할 경우 철퇴가 내려질 것이니까.
조직이론의 대가인 미국의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는 “물리력이나 금전에 기반한 권력에 대해서는 권력복종자가 부정적 감정을 갖는 반면, 도덕에 기반한 권력에 대해서는 권력복종자가 긍정적 감정을 갖는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한존경을 받고, 조현아 부사장이 무한경멸을 받는 이유다.
한국사회의 지도층은 나름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리더십을 행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물리력으로, 어떤 이는 금전으로 상대의 복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지도자가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리더십은 있어도 좋은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자신의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 비로소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도덕적 리더십을 갖추면 존경은 저절로 따라온다. 존경받는 지도자는 부하를 호통치거나 무릎 꿇릴 필요가 없다. 인사권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시점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천하는 지도층이 인간문화재만큼 귀한 실정이다. “영국엔 세계적인 요리사가 없고, 미국엔 세계적인 철학자가 없고, 한국엔 세계적인 지도자가 없다”는 농담이 있다. 세계적인 지도자는 고사하고 국민적 지도자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번 겨울에도 익명으로 거액의 성금을 기부하는 독지가들이 나타났다. 돼지저금통에 모은 돈까지 기부한 것으로 보아 흔히 말하는 갑부는 아닌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의 지도층들은 얼마나 을의 입장을 배려해 왔는지, 가진 것을 얼마나 나누며 살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는데 왜 갑의 권력은 나누지 않는지? 권력을 나누어주기 싫으면 도덕적 의무라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면서 존경받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이 땅의 지도층들이 ‘갑질’의 꼬리표를 떼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