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과열을 막기 위해 구성한 풀기자(Poolㆍ대표기자) 자격이었습니다. 마침 그해는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이기도 했지요.
먼저 물어본 20년 소감에 이건희 회장은 차분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삼성이) 커져서 좋기는 한데”라면서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참 고생을 많이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게 우리 한반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내가)창조경영을 말한 것도 이같은 의미”라고 언급했습니다.
당시 질문항목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 대한 언급도 빠질 수 없었지요. ‘언제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냐’는 직접적인 물음에는 조심스럽게 “자격이 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기초는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전무로서 조금더 경영수업을 받아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경영권 승계 의사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연초부터 재계에선 승계가 화두입니다. 현대차그룹에선 현대글로비스 주식지분 매각(13%)이 이슈의 중심에 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고, 정 부회장이 이를 바탕으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한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한 해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부회장이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승계작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지요. 비록 현대글로비스 주식매각은 불발됐지만, 현대차그룹이 계속 이를 지속할 예정이어서 큰 흐름은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삼성과 현대차의 경우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도 그룹 내에서의 위상이 많이 올랐고 이에 맞춰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병중과 중국 휴대폰의 저가공세 속에서도 삼성전자를 무난히 이끌고 있고, 정 부회장도 디자인 경영주도ㆍ친환경차 개발 등 세계 자동차 변화의 흐름에 맞춰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고 있다는 평입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
최근엔 위 두사람보다 롯데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롯데그룹은 상황이 다소 다른 것 같습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맞붙는 형세입니다. 당초 한국과 일본 롯데를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각각 자연스럽게 나눠가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팽팽했던 균형은 신동빈 회장으로 기우는 분위기입니다.
신 전 부회장이 최근 롯데 주요 계열사 모든 임원직에서 해임되면서지요. 롯데가의 이슈가 흥미로운 것은 신격호 회장이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1922년생인 신 회장은 93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총괄회장으로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지분보유에서도 신 총괄회장은 확실히 그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롯데 계열사는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배하고 있고, 이 위에는 작은 포장재 회사인 광운사가 있습니다. 광운사의 지분을 50% 보유한 최대주주가 바로 신격호 총괄회장입니다.
신 회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룹 후계구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근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신동빈(왼쪽)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
모든 슈퍼리치가 그러하듯 그들이 운영하는 기업의 영속성은 아주 중요합니다. 당연히 그 기업이 발을 딛고 있는 나라의 경제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 없지요. 자칫하면 국가부도나 심지어 전쟁 등의 외부변수에 의해 한순간에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울러 내부적으로 향후 기업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신뢰할 만한 전문경영인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자녀들을 통해 이를 이어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해외에도 미국 최고의 부자 가문인 월마트의 월튼가나, 화학분야의 명가 듀퐁가 등 대(代)를 이어가는 명문 가문 등이 많습니다.
윗세대 특히 아버지로선 자녀들의 능력과 자질을 볼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아버지의 입장에선 자녀들이 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도 부족해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때로는 혹독히 단련시키기도 하지요.
아버지가 존재하는 한 후계구도를 언급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재계 3, 4세들이 늘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과연 롯데가의 신 회장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재계는 물론 많은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신격호(辛格浩) 회장의 '신(辛)의 한수'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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