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방어를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이란 긴급조치를 단행했으나 달러대비 루블화 가치는 장중 한때 25% 급락했다. 국제유가도 하락세를 지속하며 브렌트유마저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60달러를 돌파했고, 미국의 추가 경제제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며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애플의 온라인 판매 중단, 일부 업체들의 외환거래 중단, 소비자들의 실물자산 구매 증가 등 시장의 대응은 과거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재현을 예고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루블화는 중앙은행의 전격적인 금리인상 발표 이후 10% 급반등했지만 다시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섰다.
루블화는 장중 한때 25% 폭락하며 달러당 80루블까지 치솟았고 유로화 대비 루블화도 100루블 선을 넘어서는 등 급등세를 보이며 화폐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장 막판 루블화는 다시 68루블 선에서 안정을 찾았으나 올 들어 100% 이상 오르며 1998년 디폴트 위기를 연상케 했다.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는 국제유가도 하락세를 늦추지 않았다. 이날 ICE 선물시장에서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1.2달러(1.97%) 하락한 59.86달러를 기록하며 60달러선이 결국 붕괴됐다.
이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루블화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모스크바 시내에서 달러화와 유로화 환전을 서두르는 이들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시내의 한 은행에서는 예금과 연금을 인출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고 심지어 차량 및 가구, 보석 등 실물자산을 구매하려는 사람도 나타났다고 전했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 쿠르스키역 지점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대기열에 선 한 여성은 FT에 “연금을 인출해 달러화로 바꾸려 한다”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루블화 가치가 얼마나 떨어질지 모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현지 경제전문가는 블룸버그통신에 외환 거래 수요가 일일 평균보다 3~4배 증가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구찌 등 명품브랜드들이 밀집한 인근 쇼핑몰에선 가방, 보석들을 구매하는 시민들도 나왔다. FT는 루블화 폭락이 내구재 구매를 늘리고 있다며 “올 연말까지 계속 떨어질 것 같다”며 “지금이 가구를 살 때”라는 한 중년 의사의 말을 전했다.
경제가 뒷걸음질치고 있는데도 11월 차량 판매도 증가했다. 러시아 무역단체 유럽기업연합(AEB)은 12월 판매는 더욱 늘 것으로 내다봤다.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애플은 러시아에서의 온라인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앨런 헬리 애플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가격을 다시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 러시아 내 온라인 상점 이용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달 애플은 루블화가 급락하자 러시아 내 아이폰6 가격을 25% 인상한 바 있다. 러시아 내 아이폰 가격이 유럽지역에서 가장 싼 700달러 수준에서 판매됐기 때문이다.
외환 온라인 중개업체인 FXCM도 최근 루블화의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17일부터 미 달러화에 대한 러시아 루블화 거래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뿐만 아니라 루블화 하락은 미국 내 러시아 관련 금융상품도 흔들었다. 뮤추얼 펀드인 바야러시아펀드는 연간 수익률이 43.44% 하락했고 러시아 관련주가 51%를 차지하는 T.로우프라이스신흥유럽펀드도 올 한해 수익률이 37.28%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1998년 모라토리엄의 재현을 점치기도 했다.
나탈리아 아킨디노바 러시아 고등경제대학(HSE)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린 경제위기를 보고 있다”며 “과거 금융위기때 그랬던 것처럼 중앙은행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만한 준비금을 가지지 못한 가운데 루블화의 급격한 가치하락을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환율방어에 필요한 외환보유고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고는 11월 기준 4188억8000만달러로 세계 6위 수준이지만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며 전년도(5155억9000만달러)에 비해 1000억달러 가까이 줄었다. 이를 의식한 중앙은행은 지난달 환율방어에 하루 3억5000만달러만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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