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위기는 무엇보다 서방의 대러제재와 유가폭락에서 기인했지만 국영석유기업 로즈네프트를 살리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중앙은행이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빚더미’ 로즈네프트 구제 혈안=미국 경제지 포천은 16일(현지시간) “루블화 폭락이 전형적인 ‘통화붕괴’”라고 평가했다.
하이프리컨시이코노믹스의 칼 바인버그 수석 경제전문가는 “러시아의 위기는 서방의 제재, 유가폭락, 그리고 국영석유기업 로즈네프트를 살리기 위한 러시아중앙은행의 ‘돈 찍어내기’ 같은 금융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같은날 “이번 혼란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로즈네프트와 관련된 이례적인 거래”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FT에 따르면, 로즈네프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를 구가하던 지난해 경쟁사인 TNK-BP를 인수하기 위해 해외 은행과 러시아 은행에서 400억달러를 빌렸다.
그러나 저유가와 서방제재 충격으로 빚을 갚거나 차환할 수 없게 되자 푸틴 정권은 직접 로즈네프트 구제에 나섰다. 로즈네프트의 최고경영자 이고르 세친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다.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게 된 로즈네프트는 지난 주말 110억달러 어치 루블화 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이를 러시아 대형 국영은행들이 사들이면서 이른바 투기 형태로 변질됐다. 투자자들이 로즈네프트 채권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율은 만기가 비슷한 러시아 국채보다도 낮았다. 서방의 제재 아래 있는 회사채 금리가 국채금리보다 낮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 중앙은행은 로즈네프트 채권을 사들인 구매자들에게 그 채권을 은행 대출에 담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러시아 전문가이자 파리정치대학 세르게이 구리프 교수는 FT에 “로즈네프트 거래는 시장에 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며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의 우선순위가 인플레이션 해소와 루블화 안정이 아닌 로즈네프트 지원에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앙은행이 매우 의문스러운 정책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기록적인 자금이탈과 투자부족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전략도 명확한 이해도 없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눈덩이’ 러시아 외채=로즈네프트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관기업이 보유한 대외 부채는 67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 전체 경제의 3분의 1수준이다.
루블화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면 외화표시 부채 부담은 눈덩이로 불어나면서 러시아 기업 경영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바인버그는 블룸버그에 “(루블화 폭락으로) 지난 밤새 러시아 채무자들이 해외 빚을 갚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루블화 규모가 20% 증가했다”며 “이달 들어 50%, 지난 11월이후 90%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인들의 외채 실질금리는 6000% 이상으로 상승해 러시아 경제를 고사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차르’ 푸틴 지도력 붕괴=러시아 경제가 주저앉자 푸틴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구리프 교수는 “러시아가 ‘선장’ 없이 경제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묘사했다. 블룸버그는 “푸틴의 경제시스템의 붕괴”라고 평가했다.
모스크바 소재 가이다르 경제정책연구소의 키릴 로고프는 블룸버그에 “지금의 상황이 5년 전(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안좋다”며 “푸틴 대통령은 상황을 통제할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실추할 위기에 처했고, 국가를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고프는 “푸틴의 전반적인 경제모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FT도 푸틴 대통령이 2주 전 내년도 예산안을 GDP 성장률 2.5%, 인플레율 5.5%, 국제유가 96달러를 기준으로 상정한 것을 거론하면서 “이같은 가정은 완전히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러시아 현재 경제상황은 제로성장에 인플레율이 10%에 달한다. 국제유가가 60달러일 경우 내년 성장률이 4%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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