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50달러 선을 향해 가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60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국제유가 하락이 세계 경기 부양을 이끌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석유소비국엔 소비진작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산유국은 우려한다는 기존의 관념들이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전망과 글로벌 증시 하락으로 깨지고 있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공포… 저유가, 경기부양책 될 수 없을지도=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1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55.91달러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는 61.06달러로 마감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새로운 저유가 시대에 (유가하락이)마법의 경기 부양책이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며 최근 유가하락에 대한 우려섞인 전망을 내놨다.
유가하락으로 인한 경기부양 기대감이 신기루일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스티븐 킹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중국, 일본의 수요가 가격 붕괴의 주요 원인이라며 “유가하락은 더 큰 문제들의 징후에 불과할 뿐”이라고 우려했다.
킹 이코노미스트는 유가로 인한 소득이 과거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하락과 저금리를 통해 이뤄졌다면 현재는 이미 일본, 유럽 등이 대규모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는 유가하락으로 인한 이득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상당수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지갑 열기가 줄어들게 되고, 돈을 쓰기 전 ‘기다려 보겠다’는 소비자들이 많다면 유가 안정세나 가격하락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같은 소비행태는 향후 저유가를 더욱 부채질하고 기업 및 가계의 투자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봤다.
유가 하락이 단기적인 부양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인식도 나왔다. 피터 프라에트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이번엔 저유가가 소비와 지출을 늘리지 못했다며 유럽의 통화정책은 정상적인 소비(사치)를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수요 감소로 국제유가가 133달러에서 40달러로 하락한 적이 있고, 디플레이션 공포와 저유가가 2010년 경기회복을 이끌어낸 사례도 있다. 하지만 FT는 유가 하락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으로 저유가가 이번에도 마법의 주문이 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 |
▶승자와 패자(?) 글로벌 시장엔…=유가하락으로 석유수입국들이 생산국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석유수입국들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익을 수송, 에너지, 기타 재화 및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면서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달 “글로벌 경제에는 좋은 소식”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국제유가가 20달러 하락할수록 2~3년래 글로벌 경제는 0.4%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주요 선진국들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보조금 지급을 줄일 수 있어 45개 주요 석유 수입국이 가장 큰 승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반대로 석유수출국은 큰 타격을 입는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데이터 전문 분석기관 CMA를 인용, 베네수엘라가 12개월 내에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직면할 가능성을 97%라고 전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2027년 만기 베네수엘라의 국채 시세는 8.5%나 떨어져 1998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채권 수익률 급등은 디폴트 우려를 높인다.
세계최대 석유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소비를 줄이고 있고, 다른 중동 산유국들도 배럴당 60달러 미만의 저유가가 지속되면 재정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ygmoon@heraldcorp.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