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우리만 잘한다고 해서 타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내년 전망에도 잿빛 구름이 드리워진 상태다.
①低성장, 고착화 국면=우리 경제는 올해 이어 내년에도 4%대 성장 달성은 이미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소비 부진과 투자 둔화 등 국내 문제뿐 아니라 세계경제 둔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대외 요건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슬슬 내년 경제 성장률의 하방 위험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내년 전망치를 기존에서 0.3%포인트 낮춰 3.5%로 내다봤다. 이미 다수 경제 연구기관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3%대 중후반을 제시한 상태다. 이로써 한국은 2010년을 제외하곤 내년까지 총 8년동안 한번도 4%대 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
더 큰 문제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 이력현상(hysteresis)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이력현상이란 저성장이 장기화될 경우 경제 참여자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고 이는 기대 성장률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총생산이 잠재 생산수준에서 멀어져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주요 선진지역이 모두 수출 확대, 수입 억제 기조를 보인다는 점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불리한 상황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당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지만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이라며 “국내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질 경우 1990년대의 일본보다 심각한 상황에 대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②低물가에 低유가, 엎친데 덮친격=저물가가 장기화되면서 디플레이션(물가하락과 경기침체의 악순환) 공포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개월만에 최저로 내려앉으며 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서부텍사스산에 이어 두바이유 가격까지 모두 배럴당 60달러 선이 붕괴되면서 저물가 기조를 고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하락은 원유 수입국인 우리로선 비용이 줄고, 수출입 교역 여건 개선으로 경상흑자를 늘려주기 때문에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 물가 안정세가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어 반가울 수만은 없다. 또 유가 폭락은 우리 금융투자 시장에 한파를 불러올 수 있다. 최근 유가가 떨어지자 신흥국 자본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하고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했다.
③엔低, 가속도 붙을듯=여기에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자민당의 총선 압승으로 아베노믹스 기조가 재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의 수출기업은 또다시 엔화 약세의 파고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까지 지속된 양적완화 정책으로 재정 부담을 느낀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현재로선 양적완화 규모를 더 늘려 엔저의 추세가 더 강해지고 빨라질 공산이 커 보인다.
엔저는 우리 수출의 가격경쟁력에 치명적이다. 이미 품질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선 한두푼이 큰 변수가 된다. 엔저는 대(對) 일본 수출에만 타격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전자, 자동차 등 우리 주력 수출품 대부분이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국제시장에도 악영향을 받게 됐다.
④低출산, 기초동력 잃어가=우리경제는 인구구조상 저출산 심화로 점차 일할 사람이 사라져 성장의 기초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통계청의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43만6600명으로 전년대비 무려 4만8000명(9.9%) 감소했다. 2005년(43만5000명)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저성장 문제와 관련, “인구구조 변화, 금융위기 이후의 투자 부진 등을 고려하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제발전 단계에 와 있다”며 저출산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⑤低금리, ‘냄비 안 개구리’ 위기=우리 금융산업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저수익 구조가 굳어지는 침체 국면을 좀처럼 벗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해외시장 개척 등 신성장 동력 개발에 나서기보단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태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러는 사이 글로벌 핀테크(Fintechㆍ금융과 기술의 융합) 기업들이 국내 진출을 적극 노크하고 있어 미래 금융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금융사들이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위기에 둔감해 있다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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