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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도 우도 싫다”…천상으로 떠난 자유주의 화가의 외침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반란 혐의가 있는 공산주의로 몰려 전기 고문도 당하고 죽을 만큼 두드려 맞기도 했어요. 상처가 난 다리에는 구더기가 끓었고 유치장이 좁아 한번 서면 앉을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죠.”

고(故) 김보현(1917-2014) 작가가 1948년 여수ㆍ순천사건 발발후 좌익 혐의로 고문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긴 말이다.

1950년 6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당시 학생들과 홍도로 야외스케치 여행을 떠났던 김보현은 또 한번 좌익 혐의로 연행된다. 당시 흑산도 지서장은 김보현이 학생들에게 공산주의 강의를 하고 있다며 자유 척결 명령을 내린다. 

새로운 생, 캔버스에 아크릴, 183×450㎝, 2012 [사진제공=신세계갤러리]

혐의가 밝혀지지 않자 유치장에서 풀려난 김보현은 이번엔 ‘친미반동 혐의’로 인민위원회에 끌려간다.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된 건지…. 나는 원래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공산주의건 사회주의건 관심이 없어요. 나는 자유주의거든요. 그러니 양쪽에서 몰린거지요.”

재미 1세대 회화 작가 김보현은 그가 생전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단 한번도 투표를 해본 적 없는” 좌ㆍ우 이념의 희생자였다.

해방 후엔 좌익 혐의로, 6ㆍ25 발발후 인민군 치하에선 친미반동 혐의로 모진 고초를 당했던 김보현은 1955년 결국 고국을 등진채 도미해 포 킴(Po Kim)이라는 이름으로 40여년을 활동하게 된다.

올해 1월 98세의 나이로 작고한 김보현의 1주기 추모전이 지난 3일부터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추상표현주의와 구상회화를 넘나드는 그의 회화 작품 30여점이 걸렸다. 한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는 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자기혁신이 드러난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동양적인 정신세계를 접목했던 김보현이 생선, 피망 등을 그린 정밀 회화를 두고 1970년대 뉴욕타임즈는 “놀랍도록 정교하다(Extraordinary exquisite)”며 극찬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새로운 생’은 고인이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으며 그려낸 마지막 대작이다. 2012년 두 차례의 전신수술 후 불편한 몸으로도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와 작품에의 열정을 버리지 않았던 거장의 에너지가 원색의 힘찬 붓질 속에 녹아있다.

전시는 2015년 1월 20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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