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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지엥의 흑백사진 속에서 무장 해제된 김창열ㆍ김중만ㆍ장미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눈빛이 묘하게 동양적이다. 한국어 발음은 느릿느릿하지만 또박또박하다. 프랑스 사진작가 로랑 바르브롱(Laurent Barberonㆍ63)에게는 한국어 이름도 있다. 박로랑. 그를 만나기 전, 그리고 그를 만나 느꼈던 첫인상, 모든 것이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착각하게 만든다.

“한국이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의 어머니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모두 프랑스인이다. 바르브롱은 쏘(ceaux) 출신의 전형적인 프랑스인이다. 

팔짱 끼고 포즈 잡는 사진은 너무 싫다는 프랑스 사진작가 로랑 바르브롱이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사진들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바르브롱, 아니 박로랑이 지난 40년 동안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국의 아티스트들을 흑백 필름에 담은 사진들로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른바 ‘파리 코레안’이다.

지난 3일 전시 오프닝 당일 갤러리에서 만난 박로랑은 프랑스에서 만났던 한국 아티스트들과의 인연을 하나하나 풀어 놓았다.

“베르사유성 앞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마라토너 손기정입니다. 들어갈 때는 날씨가 괜찮았는데 나갈 때는 비가 많이 왔지요. 우산도 없고 비옷도 없고 결국 러닝(Running)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올림픽 챔피언이 베르사유에서 러닝하는 모습이 재미있지 않나요?”

흑백 사진 아래에는 ‘1981ㆍ11ㆍVersaillesㆍSohn Kijong-Marathon winner(베르사유, 손기정, 마라톤 우승자)’라는 손글씨가 일기처럼 써 있다. 

손기정, 김중만, 승효상의 모습을 담은 로랑 바르브롱의 사진들.

베레모를 쓴 노화가가 벤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프랑스 여인이 곁눈질하며 바라보는 사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모습이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구경시켜주기 위해 김 화백과 동행했던 박로랑이 이 장면을 포착했다.

이 밖에도 김창열, 이만익, 한묵, 송번수, 백건우, 김중만, 승효상, 장미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그의 흑백 사진 속에서 ‘무장해제’ 돼 있다.

박로랑이 한국의 유명 화가부터 사진작가, 피아니스트, 건축가, 배우들을 만나게 된 건 그의 태권도 스승이었던 이관영 사범을 통해서다. 박로랑은 1969년 한국인 사범에게서 처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30년 동안 수련했다. 6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후 프랑스를 방문한 한국의 ‘유명인사’들에게 투어 가이드와 같은 일을 해주면서 더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카메라로 담게 됐다.

1979년 파리에서 만난 사진작가 김중만이 앳된 얼굴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 판화가 송번수가 박로랑에게 선물하기 위해 ‘쌍귀정(雙龜庭ㆍ거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뜰이라는 뜻으로 정원에서 거북이를 키우고 있는 박로랑의 집을 일컬음)’이라는 현판을 새기고 있는 모습 등이 기록돼 있다.

특히 송번수는 박로랑이 혼자 살던 저택에서 6개월동안 기거하는 등 인연이 각별하다. 그를 통해 김창열 화백과도 인연을 맺었다.

“큰 집에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때 송번수가 우리 집에 와서 지냈지요. 그와 함께 파리에 있던 김창열 스튜디오에도 처음 갔어요. 김창열이 캔버스에 물방울 그릴 자리를 엑스(X)자로 표시해 놓으면 거기에 송번수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죠.”

“재미있는 사진만 찍는다”는 박로랑의 초상 사진들은 인물들의 꾸미지 않은 모습들에서 재미와 함께 감동이 느껴진다.

그가 전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연.

“배우 장미희가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과 함께 골프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미스코리아 강귀정의 저택에서요. 그들이 연인사이였나고요? 아마도? (웃음)”

전시는 10일까지 관훈동 갤러리나우에서 볼 수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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