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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대륙부자? 뛰어봤자 바둑판, ‘뒤집거나 뒤집히거나’
샤오미, 제조업 틀 깬 SW개발 승부수
온라인만 주력한 유통전략도 대성공

태양광전지회사 前선텍 회장 스정룽
외형만 키우다가 결국 파산 ‘큰 대조



[특별취재팀=윤현종 기자] 중국 내 바둑 애호가는 3200만명(대만 포함ㆍ2009년 기준) 정도다. 한국 인구의 60% 이상이다. 단순히 ‘바둑인’만 많은 게 아니다. 바둑의 역사를 소개한 국제바둑연맹(IGF) 홈페이지엔 중국이 그 발상지임을 명기했다. 가로ㆍ세로 각 19줄로 판을 수놓은 361집의 예술은 중국인 일상에 스며든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바둑은 대륙 부자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두뇌게임이다. 삶과 인생을 바둑에 빗대는 경우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최근 중국 최고 부호로 자리매김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세상 모든 일을 바둑에 빗대 생각한다고 전한다. 중국판 포브스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중국 CEO’ 2위에 오른 둥밍주(董明珠) 거리(格力)전기 회장도 “인생은 바둑과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아가 인생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사업 스토리도 바둑에 빗대 풀어내는 부호들은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중국 부자들이 흑돌과 백돌 간 치열한 수 싸움을 자신의 이야기에 덧입히는 건 왜일까. 시나브로 약육강식이 대세가 된 비즈니스 전장 속에서 자신만의 ‘집’을 확보한 이가 대부분이라서다. 그들에게 집은 곧 돈 주머니다. 그것도 스스로 만든 경우가 절대다수다.

포브스 빌리어네어 순위에 이름을 올린 중국 부호 136명(2014 하반기 기준) 중 90% 이상은 자수성가로 부를 일궜다. 이들에게 돈 번 과정 한 단계가 바둑판에서 한 집을 따낸 전적으로 인식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 초고액(330억원 이상) 보유 자산가 1만1070명의 부가 한국 국내총생산(GDPㆍ2014 IMF 기준)보다 1155억달러나 많다해도, 그들이 쌓아올린 부의 그림은 결국 여러가지 기보(棋譜) 중 하나로 귀결된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판을 이끈 자도 있다. 결정적인 패착으로 판을 그르친 이도 존재한다.

레이쥔 샤오미 창업자

▶‘큰 쌀’된 좁쌀…레이쥔의 판 뒤집기=지난 1월 18일 징지르바오(經濟日報) 등 중국 현지 매체들은 전날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연 좌담회에 주목했다. 이는 리 총리가 3월 발표할 국정보고에 담을 의견과 건의를 듣고자 사회ㆍ경제 각계 인사를 초청한 자리다.

이 중 신징바오(新京報)는 좌담회에 참석한 레이쥔(雷軍ㆍ44) 샤오미 창업자의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총리가 제게 ‘레이쥔, 한번 말해봐요. 듣자니 좁쌀(샤오미ㆍ小米)이 이미 큰 쌀(大米)로 컸다는데’ 라고 하더군요”

리 총리의 한마디는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레이쥔과 스마트폰 시장의 글로벌 강자 샤오미는 중국 경제의 자랑이 됐다.

개인 자산과 회사의 성장세는 무섭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 3월 40억달러(세계 빌리어네어 375위)에 머물렀던 레이쥔의 순자산은 7개월 후 갑절이 넘는 91억달러가 됐다. 앞서있던 세계 억만장자 230여명을 단숨에 제쳤다. 중국에서도 8대 갑부가 된 그의 자산은 2일 현재 93억달러다.

창업 4년 만에 저가 스마트폰 열풍을 이끌고 있는 샤오미의 활약도 눈부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커널리스에 따르면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샤오미 점유율은 16%로 1위다. 삼성전자를 2위로 밀어냈다.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도 샤오미는 3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런 성적만으로 레이쥔과 샤오미의 승승장구를 설명하기엔 모자란다. 그가 기존 스마트폰시장에 뛰어들어 ‘판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먼저 소프트웨어(SW)다. 본래 레이쥔의 전문 분야는 스마트폰 껍데기(HWㆍ하드웨어)를 만드는 게 아니라 SW 개발이었다. 샤오미의 운영체제(OS) MIUI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기초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방형이다. 사용자인 동시에 팬들인 ‘미펀(米紛ㆍ샤오미의 팬이란 뜻)’이 직접 OS 업데이트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업데이트는 매주 이뤄진다. 샤오미는 “현재 MIUI는 미펀 수백만명과 함께 개발 중이다. 사용자 7000만명이 다운로드했다”고 설명한다.

샤오미의 이 같은 특장점은 바둑으로 치면 판을 뒤집고자 착수(着手)부터 달리한 꼴이다. 삼성처럼 HW에 집착한 다른 스마트폰 제조기업과 스스로를 차별화 한 원동력이다.

남다른 유통 전략도 성공에 기여했다. 온라인에만 물량을 풀었다. 마케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만 주력했다. 비용을 크게 줄였다. 입소문이 주를 이루니 소비자에게도 강하게 어필했다. 샤오미 제품들은 출시될 때마다 몇 초 또는 몇 분 내 매진됐다.

그뿐 아니다. 레이쥔은 투자할 때 사람을 먼저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판이 아닌 ‘돌’의 상태를 먼저 본다. 투자 행위를 ‘돌 놓기’라고 볼 때 한 번 놓은 건 간섭하지 않는다.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레이쥔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실패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공들인 사람들과 샤오미는 달랐다. 그렇게 둔 수는 단기간에 판을 바꾸는 자산이 됐다.

스정룽 전 선텍 회장

▶패착으로 판에 뒤집힌 스정룽=레이쥔이 절치부심 끝에 판을 뒤집는 데 성공한 반면, 스스로 키운 판을 감당 못해 무너진 이도 있다. 작년 상반기 파산하고 중국 최고의 부자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스정룽(施正榮ㆍ51) 전 선텍(Suntechㆍ尚德) 회장이 그런 경우다.

스정룽은 호주에서 태양전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1년 중국 장쑤(江蘇)성에 태양광 전지모듈 제조회사인 선텍을 세웠다. 그의 회사는 당시 태양광 전력산업 육성에 몰두했던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2005년 중국의 제조업체로는 최초로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2006년엔 포브스 선정 중국 부호 1위에 올랐다. 창업 당시 40만달러였던 그의 순자산은 2008년 기준 29억달러로 늘었다. 7000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 당시 그의 별명은 선킹(Sun King)이었다. 태양광 발전분야의 왕좌에 올랐다는 의미다. 선텍의 태양전지 생산량은 한때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무기로 외형 키우기에만 집착한 게 화근이었다. ‘대마는 죽지 않는다(大馬不死)’는 건 신화에 불과했다.

때마침 2010년 이후 태양광발전산업에 낀 거품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장은 공급과잉에 시달렸다. 몸집을 불린 건 스정룽의 패착이었다. 중국 정부도 비대해진 태양광 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끊었다.

설상가상 세계적인 불경기가 닥치면서 선텍은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2010년엔 순손실 10억67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1∼3분기엔 영업손실만 3억7800만달러에 달했다. 결국 2013년 스정룽의 회사는 파산했다. 당시 선텍의 부채는 23억달러 정도였다. 그는 결국 자신이 일군 회사에서 해임됐다. 물러난 직후엔 사법처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 법원은 그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사실 그의 삶은 상당히 극적이었다. 스정룽은 1963년, 당시 수천만명을 굶어죽게 한 대기근이 있었던 해에 태어났다. 우여곡절을 거쳐 1980년대 후반 국비장학생이 돼 호주로 건너갔다. 이후 ‘유학파 CEO’로 중국을 넘어 업계에서 세계 최대 업체 주인이 됐다. 그러나 큰 덩치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최고(最高)’ 자리까지 담보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이 키운 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뒤집힌 신세가 됐다.

파산 이후 스정룽의 회사는 동종업계 다른 기업 손에 넘어갔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스정룽은 여전히 태양광 발전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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