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위를 좁혀 자산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인 국내 부자 21명 중 자수성가형은 3명밖에 안됩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10년 넘게 쌓여왔단 것입니다. 포브스 집계 등에 따르면 1996∼2010년 최소 한 번 이상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찍은 빌리어네어는 전세계 1723명, 이 중 33개국 722명이 자수성가 부자로 분류됩니다. 한국은 6명에 그쳤습니다. 왜일까요. 아마 자수성가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업을 위한 사무실 임대료만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연스레 서울 명동과 강남의 저 비싼 땅과 건물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아이파크에까지 시선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부동산 부자를 촘촘히 살펴보려는 기획은 그래서 출발했습니다.
본지가 전수조사를 통해 땅값이 가장 비싸거나 가파르게 오른 곳을 실증하고 그 소유자의 면면을 분석했습니다. 고가 아파트단지 소유자들을 일일이 알아봤습니다. 소위 ‘부동산 업자’들이 흘리는 뜬소문은 일체 배제했습니다.
지난한 작업이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지단체에선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추가 취재를 통해 토지대장 1427개와 등기부 700여개를 모두 하나하나 다시 찾았고, 이후 각 소유자와 법인을 하나씩 살펴보고 일치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추가 인물 취재와 전문가 조언 등을 토대로 자료를 검증해 갔습니다. 이 기간만 3개월여 걸렸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부자들의 부동산 사랑(?)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청담동의 경우 특정 기업이 한 블록 토지 거의 전체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왜 매입했는지 파악하기 힘든 땅들도 꽤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땅을 많이 갖고 있다고 판단된 중견 제조업체 오너도 있었지요.
일부 고가 토지주 중엔 전과경력이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청담동 73번지 일대 땅을 갖고 있는 목모(80대 여성) 씨는 병원 원장 직함을 갖고 있지만, 1990년엔 땅투기로 구속돼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명동 땅부자 중에도 횡령 등의 협의로 철창신세를 진 이가 더러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땅ㆍ집 등은 부자들의 주된 치부(置簿ㆍ금전이나 물건의 출입을 기록하는 장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싸게 산 땅에 ‘명품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물에선 임대료도 꽤 나오지요. 땅값도 자연스레 올라갑니다. 일부 한국 부자들 중엔 임대료를 통해 굳이 증여나 상속을 통하지 않고도 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람도 있었습니다. 어느 한 독자는 e-메일을 통해 명동 초고가 토지를 소유한 ‘사채왕 가족’ 단모 씨의 소유 여부를 확인해 주기도 했습니다. 소유주들의 이면과 그들 간의 관계가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기획으로 통해 얻은 시사점은 사실 단순합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여전히 부호들에겐 주요한 재테크 수단입니다. 특히 부자들에겐 명품을 소유하듯 또다른 프라이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초고가 아파트나 빌라에는 그들만의 문화도 형성돼 있었습니다.
자수성가를 통해 고가의 땅과 집을 산 이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존 상속형 부자들 중에 이를 소유한 이들이 더 많았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헤럴드경제가 언론사 최초로 전수조사를 통해 3회에 걸쳐 진행한 이번 기획은 최고가 땅과 집을 가진 부동산 부자들의 민낯을 드러낸 점, 그 자체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에는 희망이, 누군가에는 절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지혜나 철학을 사회 구성원 누구나 진입장벽 없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동산 역시 올바른 절차를 통한 축적이 이뤄져야 슈퍼리치가 나올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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