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황유진 기자]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와 세계 시장을 놓고 우리 IT 업계가 고분분투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가 그렇고, 포털, 게임, 시스템통합(SI)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의 낡은 법과 제도는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오히려 업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이 한국을 ‘IT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규제의 ‘역차별’이 심각하다. 구글과 애플이 사실상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앱마켓이 대표적인 사례다. 토종 앱 마켓인 ‘T스토어’나 ‘N스토어’의 경우 스마트폰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앱을 판매하려면 해당 앱 개발사는 먼저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반면 해외 개발사들은 신고 없이도 앱을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다. 또 국내 앱 장터는 3개월 이내까지 앱을 환불해주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구글은 2시간, 애플은 2주 이내의 느슨한 환불 규정을 적용 받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물 규제 및 인터넷 실명제 역시 국내 동영상 서비스에만 적용돼 판도라TV 등 국내 동영상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균형감 없는 규제로 인해 외산 서비스에 종속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SI업체들은 국내 시장에서 짐을 싸야만 했다.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공시장 진입을 법으로 원천 차단한 결과다. 문제는 이들의 빈 자리를 국내 중소기업이 아니라 MS나 IBM, SAP 같은 외국계 거대 공룡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 흐름에 걸맞지 않는 규제로 서비스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해외업체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허가 없이 한국의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할 수 없도록 하는 현행 법규로 인해 구글 등 글로벌 업체들은 한국에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 구글의 경우 국내에서는 지도 보기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기능 외에 실질적인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로 인해 해외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구글의 지도 서비스를 활용할 수 없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게임산업의 경우 글로벌 흐름에서 벗어나는 정부의 산업 인식이 한국을 ‘게임산업 갈라파고스’로 전락시키고 있다. 중국과 유럽 등에서는 게임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보고 국가적인 정책 가이드라인 아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 정책이 게임산업의 족쇄가 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9조7198억원으로 이미 성장세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정부는 셧다운 제도와 게임 중독법 등으로 게임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부 정책이 보완과 지원을 벗어나 규제에 편중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에 관한 오해와 부정적인 시선을 전제로 모든 정책과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게임산업이 창조경제의 선봉에 있다고 하면서도 해외 여러 국가와는 정반대인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혁신을 꿈꾸지만 현실의 법 규제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스마트폰에 헬스케어 기능을 도입하는 것을 두고 의료기기 논란이 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공략을 위한 업계의 기술 개발 노력이 법적 제한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S5’에 심박센서가, 최근 출시된 ‘갤럭시 노트4’에 산소포화도 측정기기가 탑재되면서 국내법상 의료기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출시되는 단말기에는 산소포화도 측정기기를 탑재하되 비활성화하기로 했다. 국내법상 해당 기술을 탑재하면 갤럭시 노트4는 의료기기로 분류돼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를 거쳐야 하고 판매도 의료기기 유통망을 통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에서 출시하는 갤럭시 노트4는 산소포화도 측정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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