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올해 국회 국정감사는 당초 관측대로 ‘맹탕’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원내대표 탈당 사태 등 국감 직전 있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내홍 탓에 ‘야당 잔치’에 야당이 주인공으로 우뚝 서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자원 외교로 수조원대의 국고가 유출됐고 국감 직전 불거졌던 ‘카톡 사찰’ 등은 올해의 국감 이슈로 평가될 만하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감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에 대한 질타가 여야 모두에서 이어졌다.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은 인도네시아 카푸아스 탄광 개발 사업을, 같은 당 홍지만 의원은 볼리비아와의 양극재(리튬이온 배터리 소재) 회사와의 부실 계약 등을 질타했다. 새정치연합 오영식 의원은 광물자원공사의 남아프리카공화국 탄광 사업 투자에 대해, 전순옥 의원도 광물자원공사의 호주 와이옹 탄광개발 사업 문제를 지적했다.
자원개발 때문에 수조원대의 국고가 해외로 유출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인수에 4조원이 넘는 돈을 썼다며, 이후 NARL 운영도 기이하게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NARL의 매출은 늘었지만 손실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상한 구조를 지적하면서 ‘회사 자금이 엉뚱한 곳으로 샌 것 아니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청문회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단군 이래 최악의 부실 거래’라고 비판했다. 한정애 대변인은 “자원 확보 실패는 물론이고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공기업 부채까지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법사위는 ‘카카 사찰’ 논란이 키워드였다. 당초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를 부를 계획이었지만, 법사위가 이를 떠안았다. 특히 이 대표가 법사위 국감 전날 ‘감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평가될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서울고검 국감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감청 불응’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과거에는 감청 영장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적극적인 협조를 했다”며 “앞으로는 감청 영장이 들어왔을 때 일주일치 대화를 모아서 제공했던 방식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감 기간 중 카톡 사찰 논란이 불거지면서 또다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으로의 탈주 현상도 빚어졌다. 텔레그램은 메시지 자동 파괴 기능 등 보안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국내 사용자가 200만명이 넘게 내려받았다.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은 ‘기업인 증인 채택’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가 첨예해지면서 파행 국감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게 됐다. 새누리당은 경제를 살려야 하는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불러다가 수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벌세우기 국감’은 없을 것이라는 국감 대책을 충실히 이행했다. 반면 야당 측은 이를 돌파할만한 마땅한 대안을 마련치 못하면서 ‘증인’을 사이에 두고 수차례 파행을 겪었다. 환노위의 올해 키워드는 그래서 ‘증인’이 꼽혔다. 환노위는 23일과 24일에 일반증인 12명 등에 합의했지만, 다수 참석자들이 기업 오너가 아니어서 다소 맥빠진 국감이 됐다는 평가다.
국감의 ‘맥’이 빠지다보니 ‘번외편’이 도리어 이슈로 부각된 상임위도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선 ‘빼딱 메모’가 국감을 뜨겁게 만들었다.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과 정미경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을 비하하는 필담을 주고 받는 것이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송 의원과 정 의원은 국방부 국감 장에서 진 의원을 향해 ‘쟤는 뭐든지 빼딱!’, ‘이상하게 XX 애들은 다 그래요!’ 등의 내용이 담긴 메모를 주고 받았다.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은 “부적절한 행위다. 분명한 사과를 하라”고 밝혔고, 진 의원은 “의원이 왜 애 취급 받아야 하나. 삐딱하다는 평가는 뭐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사과를 하면서도 ‘언론이 몰래 촬영했기 때문’이란 단서 조항을 달았고, 사과를 할 수 없다던 송 의원은 ‘심심한 유감’이란 말을 ‘사과’란 말 대신 사용했다.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스스로를 ‘트러블 메이커’라 칭했던 김성주 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올해 국감에서 확실한 ‘트러블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국감 직전 한적 총재가 되면서 ‘낙하산 논란’, ‘과거발언 논란’에 휩싸였던 김 총재는 급기야 지난 23일에는 여야 합의로 ‘동행명령장’ 발부가 의결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기관 증인이 국감에 불참하는 사태는 전례가 없는 일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까지도 김 총재의 국감 불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총재가 뒤늦게 불출석 사유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새정치연합 측에선 ‘도피성 해외 출장’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김 총재는 오는 27일 오후 2시까지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복지위는 같은 날 오후 6시까지 동행명령을 집행할 계획이다. 동행명령 집행이란 사실상 ‘체포’에 해당한다.
한편 오는 27일 종합감사를 끝으로 대다수 상임위의 국감은 모두 끝이나지만, 일부 상임위 국감은 이후에도 진행된다. 대통령비서실(28일), 국회사무처(29일), 여성가족부(29일)는 국회에서 국감이 실시된다. 국가정보원(28일), 국군기무사령부(11월 3일), 경찰청(11월 4일)은 각각 해당 기관에서 국감이 진행된다.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