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허연회ㆍ하남현 기자] 담뱃값을 인상하는 것으로 이른바 ‘죄악세(Sin-Tax)’에 손을 댄 정부가 머지않아주세(酒稅)까지 손을 뻗치게 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증세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면서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대안으로 죄악세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당장 주세를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잡아떼지만 염두에 두고 있음은 숨기지 않는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선 주세율을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문 실장은 다만 사견임을 전제로 “담배와 술 등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세율을) 올릴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세계적으로 음주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폐단도 많은데 음주에 너무 관대한 게 아닌가 싶다”면서 “술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부과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해 주세율 인상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술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외부에 공개하거나 공개 토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국가적으로 담배보다 술이 야기시키는 문제가 더 크다고 보고 있어 주세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주나 맥주, 위스키에 붙는 주세는 제조원가의 72%로, 국세와 제방세목 가운데 세율이 가장 높다. 여기에 주세의 30%인 교육세와 부가가치세 10%를 더하면 실제 세율은 113%까지 올라간다. 제조원가가 100원이라면 주세 72원, 교육세 21.6원, 부가가치세 19.36원이 붙어 출고가격만 212.96원이 된다.
만약 정부가 주세를 조정한다면 담배와 같이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신설하거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새롭게 부과하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현재 술에는 담배와 달리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없다. 주세는 지난 10년간 동결 상태다.
술은 담배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 담배의 사회적 비용은 5조6000억원이지만 술은 18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부는 노무현 정권 때인 지난 2005년 세제개편안에서 소주와 위스키 세율을 72%에서 90%로 높이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주세율 인상을 추진하다가 ‘서민 증세’ 역풍에 접어야 했다.
그 동안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들은 술과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기했다. 이번에 담뱃세를 올리면서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것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옛 조세연구원) 등 정부의 용역을 받은 국책 연구기관들의 주장이었다.
최근 정부가 담뱃값을 2000원 인상을 추진하기로 발표한 뒤 곧바로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계획을 내놓자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세수 부족을 메우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담뱃세 인상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잠잠해지면 세수 부족 확충과 함께 국민건강 등의 이유로 주세율 인상 논의가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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