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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문학 월드스타 이석영 교수, “우리는 초신성의 후예”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찌그러져 장판에 붙어사는 실업자도 아무리 보잘 것 없이 보여도 초신성의 후예입니다. 그를 만들어내기 위해 전 우주가 140억년을 합작한 것이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우주를 보며 깨닫게 됩니다.”

복잡한 수식과 대형 천체망원경, 컴퓨터 속 디지털 기호들을 다루는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도 “집에 전구가 나가도 아내가 몇 번을 불평해야 겨우 갈아 끼운다”며 “나는 기계치”라고 고백했다. 목소리 높이는 법 없는 차분하고 겸양어린 대화지만, 슬며시 껴드는 유머와 여유가 유쾌했다. 한낮 교정에선 세월호 참사로 미뤄두었던 학생들의 봄축제가 한창이었던 더운 초여름날,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이석영 교수(48)를 만났다.

연세대 이석영 교수 인터뷰./ 안훈 기자 rosedale@ 2014.05.30

그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옥스퍼드대 물리학 교수를 거쳤으며 천문학 최고 권위 학술지인 ‘미국천체물리학회지’ ‘사이언스’ 등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해 지난 10년간 세계 상위 1% 피인용 논문의 횟수가 가장 높은 한국 과학자 10인 중 한명으로 선정돼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지식창조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일상의 단상과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 천체물리학자로서의 사유를 담은 에세이집 ‘초신성의 후예’(사이언스북스)를 최근 펴냈다.

“낮과 밤, 별, 하늘에서 시인들은 낭만을 찾아내고 아름다움을 발견하죠. 물론 우리는 왜 낮이 밝고 밤이 어두운지 빛 입자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과학자들 역시 근원적인 존재의 의미, 아름다움의 가치를 탐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연구하다 보면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운동에서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시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연세대 이석영 교수 인터뷰./ 안훈 기자 rosedale@ 2014.05.30

에세이에서 이 교수는 당구에서 고전역학을 깨닫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을 ‘레일레이 산란’으로 분석하며, 밝게 빛나는 해에게 흑체복사곡선을 겹쳐놓았던 젊은 시절 ‘과학도의 일상’을 보여준다. 미국 유학 중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바다가 둥글게 보이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호나우드가 날리는 무회전킥의 움직임을 보면서 물리학의 법칙을 새삼 확인하던 청년 과학자는 우주의 빅뱅에서 초신성의 폭발을 거쳐 수소, 탄소, 질소, 산소, 황, 인 같은 주요 원소들이 어떻게 생성돼 인체를 이루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어른’이 됐다.

이 교수의 에세이는 자연 현상에서 물리법칙을 대입하는 것을 넘어서 우주의 운동에서 삶의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사유로 한발 더 나아간다. 초신성 폭발에서 ‘(사회)환원의 정신“을 배우고, 열역학법칙에서 ‘공감의 원리’를 이끌어내며, 암흑에너지에서 ‘사랑의 힘’을 느끼고, ‘원시 밀도 요동’에서 ‘개성과 다양성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암흑물질에서 ‘교육에서의 기회 평등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식이다. 에세이에서 이 교수는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사회와 기회의 대물림을 강요하는 교육시스템, 획일성을 강요하는 대학교육에 잽을 날리듯 쓴 소리를 던진다. 

연세대 이석영 교수 인터뷰./ 안훈 기자 rosedale@ 2014.05.30

“마침 오늘 다른 교수들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왜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수학자들이 많이 못 나올까 한참 이야기했어요. 수학교육이 한두 참고서로 획일화됐기 때문이라는 데 많이 공감했습니다. 우리 교육에선 독창적이고 남다른 상상력보다는 계량화된 경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적인 능력과 상상력이 충만한 10대에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니 말입니다.”

이 교수는 은하의 분광학적 진화에 관한 이론으로 박사 학위(미국 예일대)를 받았으며, 그가 만든 항성 진화 이론 모형은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는 스스로 ‘21세기의 천문학’이라고 칭하는 ‘은하 형성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자신을 ‘은하 탄생의 비밀을 연구하는 학자’로 소개했는데, 일종의 ‘반전’이 있다. 그의 선친은 목사였고, 이 교수 또한 기독교인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교회에서 아기 예수를 찾았던 당대의 ‘천문학자’인 동방박사 이야기에 빠져 천문학자가 되기로 했다. 


“우주 최초의 순간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명쾌한 설명이 없습니다. 단지 추측만 있을 뿐이죠. 요새 ‘신은 없다’는 주장을 담은 과학자들의 대중 저서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인류가 만년 정도 존속한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진실을 그들은 ‘과학’이라고 부르며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일종의 답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답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연현상엔 여러 개의 해가 존재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과학자인 나는 알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에 힘씁니다. 신앙인인 나는 자연으로만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신의 섭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힘씁니다. ”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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