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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도 몰랐던 데뷔곡, LP로 되찾았죠”
대중문화평론가가 정리한 한국 대중음악사…‘대중가요 LP 가이드북’ 저자 최규성
90년대 희귀음반 전문가 명성
LP 2만장 등 수집물품 10만여점

318장 LP 오리지널 초판 소개
방대한 사진자료 백과사전 방불


대중가요 LP 가이드북
최규성 지음
안나푸르나
‘님과 함께’ ‘빈잔’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국민가수’ 남진. 그러나 그는 한동안 자신의 데뷔곡을 ‘서울 플레이 보이’가 아닌 ‘가슴 아프게’로 잘못 알고 있었다. 전인권이 불러 유명해진 곡 ‘사노라면’은 한동안 작자미상의 곡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이 곡은 지난 1966년 길옥윤의 작곡집에 실렸던 곡이었고, 처음 부른 이는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쟈니 리(본명 이영길)였다.

K-팝(Pop)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가수가 자신의 데뷔곡을 잊어버릴 정도로 허술하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는 음반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을 즐기면서도 저급한 문화로 폄하하는 이중적인 시각이 팽배했던 70~80년대를 지나오는 동안 수많은 ‘팩트’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부족한 ‘팩트’ 앞에서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려는 시도는 말의 향연 내지는 미완일 수밖에 없었다. 최규성(53) 대중문화평론가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철저하게 직접 발굴한 수많은 ‘팩트’를 바탕으로 대중음악사의 척추를 바로 세우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지난 19일 서울 동교동 카페 ‘1984’에서 기자와 만난 저자는 “지난 90년대 말 한국 대중음악사를 체계적 정리한 책을 구입하고자 서점을 찾은 일이 있었는데, 단 한 권도 없어 충격을 받은 것이 집필의 계기였다”며 “전문가들이 자료로 믿고 활용할 수 있고, 비전문가들도 흥미를 가지고 읽을 만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사진 자료다. 지난 90년대 PC통신 하이텔 AV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저자는 희귀 음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며 ‘절판소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저자가 부르는 가격이 ‘시가’로 통할 정도였다. 저자가 지금까지 모든 LP는 무려 2만여장에 달한다. 이 밖에도 CD, 테이프, 유성기, 포스터, 무대 의상 등을 포함하면 대중가요와 관련된 수집 물품들의 수가 10만여점 이상이다. 이 책에 소개된 LP는 총 318장으로 모두 오리지널 초판이다. 이 중에는 신중현의 록밴드 애드포의 1964년 데뷔작을 비롯해 히식스, 키보이스의 LP 등 마니아들 사이에서 실체 여부에 대한 논란까지 일었던 음반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저자는 “소개된 LP의 95%가량은 직접 수집한 것들이고, 나머지는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며 소장자들을 찾아 촬영했다”며 “2000여장의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석 달의 시간이 들었지만 힘든 줄을 모르고 열중했다”고 집필 과정을 전했다.

저자의 집요한 수집벽을 통해 모인 방대한 자료에 오랫동안 일간지의 기자로 근무하며 체화된 취재력이 더해지자 ‘팩트’는 더욱 충실하고 치밀해졌다. 이 같은 저자의 노력을 통해 1958년에 만들어진 ‘KBS레코드’ 시리즈가 국내 최초의 LP라는 사실이, 1966년 이금희의 MBC 최고가수상 수상을 기념해 제작한 골든디스크가 한국 최초의 골든디스크라는 사실이, 펄시스터즈의 데뷔곡 ‘커피 한잔’이 애드포의 앨범에서 보컬 서정길의 목소리로 ‘내 속을 태우는구료’란 제목으로 먼저 발표됐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출간한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가 19일 서울 동교동 카페‘ 1984’에 전시된 오리지널 초판 LP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간결한 문장과 입체적인 목차다. 음악 리뷰하면 떠오르는 좀처럼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란한 문장 대신 핵심을 찌르는 쉬운 ‘돌직구’ 문장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신중현, 포크, 그룹사운드, 트로트 등 주제별로 묶인 목차는 대중음악사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만들어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저자가 음반마다 실거래가 등을 고려해 다섯 단계로 매긴 등급은 LP 수집가들을 위한 귀중한 참고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단순한 가이드북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이유다.

저자는 “최근 들어 뮤지션이 LP를 발매하는 일은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과정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며 “LP가 다시 음악 산업의 물줄기를 되돌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음악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이어지는 한 LP의 미래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페 ‘1984’에선 이달 말까지 저자가 소장한 오리지널 초판 LP 80장이 전시될 예정이다. 전인권의 앳된 모습이 담긴 솔로 앨범 재킷부터 패티김과 고(故) 길옥윤 작곡가가 지난 1966년 결혼식 하객들에게 증정한 비매품 LP 등 귀중한 자료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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