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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
나치 약탈문화재 대량 발견으로 본 전 세계 문화재 환수의 현재



지난 해 봄, 독일 뮌헨의 한 아파트를 급습한 검찰과 세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탈세한 현금이 좀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용의자의 아파트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알브레히트 뒤러, 프란츠 마르크, 오토 딕스, 에밀 놀데 등 거장의 작품 1400여 점이 쌓여 있었다. 모두 나치 약탈 미술품이었다. 1930~1940년대에 나치 정권이 ‘퇴폐 미술품’으로 낙인찍어 미술관, 유대인 화상, 수집가로부터 빼앗은 것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실됐을 것이라 추정됐던 작품들이다. 지난 11월 독일 정부가 1년 6개월의 늑장 조사를 끝내고 이 ‘나치 약탈 미술품’ 리스트를 공개하자 전 세계는 약탈 미술품의 규모와 가치(약 1조4000억원 추정)에 놀랐다. 또한 원주인에게 작품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화재 반환’에 관한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나치가 압수한 미술품 규모를 1만6000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글로벌 이슈로 부상한 약탈 문화재 반환=약탈 문화재의 반환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와 연관돼 있다. 가까운 중국을 보면, 해외로 불법유출된 문화재는 약 164만 점에 이르는 것으로 유네스코는 보고 있다. 박물관 외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제외한 것으로, 이들까지 합하면 10배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정부는 유형문화유산을 담당하는 하는 국가문물국의 산하에 중국문물정보자문센터(中国文物信息咨询中心)라는 기구를 두고 해외문화유산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등 환수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4일 중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는 중국인들과 ‘소통’을 위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개설했다가 영국이 약탈한 중국 유적 반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중국의 유명한 싱크탱크인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이 대영박물관에 2만3천개의 약탈품이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영국은 불법적으로 약탈한 문화재를 언제 돌려줄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중국 외교부 역시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관련 국가의 정부부문 등이 중국인민의 감정을 존중해 책임있고 우호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히는 등 문화재 반환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독일 베를린 신 박물관 소장 ‘네페르티티 흉상’. [사진=박물관홈페이지 캡쳐]

이집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독일 베를린 신 박물관 소장), 로제타석(영국 대영 박물관 소장), 덴다라 사원의 십이궁도(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등 주요 문화재의 반환을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집트 정부는 문화유산의 보호와 관리를 담당하는 최고유물위원회(Supereme Council of AntiquitiesㆍSCA)를 두고 환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2년 SCA 사무국 산하 ‘도난유물환수팀’을 신설하고 2008년까지 약 3천여점이 넘는 유물이 이집트로 돌아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문화재 반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 하지만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은 대영박물관에 있다. 19세기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대사였던 토머스 브루스 엘긴 백작이 자신의 에딘버러 성을 꾸미기 위해 영국으로 반출한 것이다. 그의 후손인 앤드류 더글라스 알랙산더 토마스 브루스는 “선조께서 조각을 잘 보존하기 위해 가져 온 것”이라는 인터뷰를 통해 반환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10월에 그리스에서 열린 제 3회 문화재 환수 전문가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Experts on the return of Cultural PropertyㆍICECP)에서는 이 대리석 조각군의 반환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문제는 11월 파리에서 열린 ‘불법이전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에 의제로 상정됐다.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 대영박물관 소장 [사진= flicker.com/JustinMN 제공]

이외에도 터키, 이탈리아, 짐바브웨,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 식민국을 경험한 나라들에서 문화재 환수는 국민들의 민족감정과 더해져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반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환을 강제하는 국제법이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본격화된 문화재 환수 논의는 1978년 ‘불법이전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 설립 등의 결실을 맺었으나, 위원회의 중재 및 조정결과는 구속력이 없다. 그 조정마저도 유네스코 회원국 및 관련 회원에게만 해당하고, 민간인에게는 해당되지 않기에 소유권 등 여러 법적 문제에 부딪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내부 유물들은 모두 훼손되거나 약탈돼 현재는 기둥만 남아 있다.


▶환수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그렇다면 실질적인 환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근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작년 서울에서 열린 ICECP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몇 가지 시사점이 보인다.

먼저 설득력 있는 담론의 개발이다. 반환청구국에서는 즉각 반환을 주장하지만 식민모국이었던 나라들은 방어 논리를 펴고 있다. 대형박물관에서 보관하면 장기간 안전한 보관이 가능하고, 더 많은 사람이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문화국제주의’, ‘보편적 박물관론’을 극복 할 수 있는 담론이 필요하다. 또한 문화재 반환 청구에 명확한 범위와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국외에 소재하는 모든 문화재를 100% 반환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무력침공에 의해 반출되는 등 불법적 유출이나 문화재가 유일본이거나 기원국에 유사한 문화재가 희귀한 경우 등 기준이 필요하다. 

독일 베르린의 페레가몬 박물관. 고대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유적을 가져다 전시하고 있다.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국내 불법반입문화재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자국 문화재의 국내 귀환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탈리아의 경우 1937년 로마로 가져온 악숨 오벨리스크를 2005년 에티오피아에 반환하면서 불법반출 문화재의 기원국으로의 반환이라는 대의를 주도하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유연하고 다양한 반환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아무 조건 없이 반환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많은 시간이 경과됐고, 일부 식민모국에서는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반출당시 매매 형태를 띄는 등 외형적으로 합법성을 갖춘 경우도 많아 반출 자체를 불법ㆍ무효로 규정하고 완전 반환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면 해결은 요원하다.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장기대여나 영구대여를 받는 것도 환수를 위해서라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환청구국간의 연대가 필요하다. 식민모국을 지목하여 창피주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적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관계구축을 지향해야할 것이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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