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설계원리 등 집중소개
시스템 단순화, 조직 생존열쇠로
사람 행동 이해…비용·편익 강조
정부 공공정책 미래 조언도
심플러 캐스 선스타인 지음, 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넛지’가 탄생하자 세계는 환호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관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저절로 행동하게 만드는 조작(?)이 가능하다는 데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각 정부와 기업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에서는 연료와 에너지 효율, 환경보호, 건강 관리,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를 끌어들였으며, 영국에서도 일명 ‘넛지팀’을 꾸려 금연과 에너지 효율, 장기 기증, 소비자 보호, 공공도덕 등에 써 왔다. 최근에는 마케팅에 이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그 원리와 설계를 바르고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기는 쉽지 않다.
선스타인은 이번 책에서 넛지의 속성과 설계 원리를 좀 더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넛지의 원리는 단순화다. 복잡하고 딱딱하게 얽혀 있는 것을 풀어내 단순화시키는데 넛지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직관적이면서 자동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전문화, 세분화, 시스템화되면서 더욱 절실해지는 분야다. 각자는 제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분야 밖의 사람들, 일반인들은 그 시스템에 대해 알지 못해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선스타인은 바로 이런 복잡함을 단순화시키는데 앞으로 미래 조직의 승패가 갈린다고 말한다. 단순화의 결과는 큰 편익과 적은 비용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된다.
선스타인은 단순화를 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서점은 고객이 들어와 책을 고를 때, 또 병원이나 레스토랑, 식료품 가게에 들어설 때, 혹은 승용차나 건강 관리 프로그램 등을 고를 때 해당 선택 체계가 도움이 되고 자유로운지, 아니면 해롭고 복잡하고 강제적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
“내가 펼쳐온 주장 가운데 하나는 ‘큰 정부’ 또는 ‘작은 정부’에 관한 빈약하고 지루하며 수사적인 논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최선의 정책수단을 찾아내고 경험적 증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떤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배우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에서는‘ 넛지’가 특별히 유망하다.” (본문 중) |
여기, 선스타인의 일화가 있다.
그가 처음 오바마 연방정부에 합류했을 때 관리예산처의 제프가 방에 초콜릿 그릇을 갖다 놓았다. 처음에는 같은 방을 쓰는 이들이 고맙게 여기며 초콜릿을 집어갔지만 머지않아 이 그릇은 애물단지가 됐다. 선스타인은 그릇을 옮겨놓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초콜릿을 덜 먹게 됐다. 말하자면 제프는 선택설계자이고, 사람들은 그의 선택 체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선스타인은 오바마 정부 1기 4년 동안 규제정보국 책임자로 선택설계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종이서류 서명을 전자문서로 대체하고 행정 절차를 더 단순화하고 소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줄 새로운 지침을 만들었다.
연방학자금 지원 무료 신청 프로그램도 한 예.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이전에는 신청서에 나오는 100가지가 훨씬 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서식이 복잡하다 보니 학생과 대학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를 불필요한 질문을 없애고 핵심적인 정보를 전자적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많은 학생들이 쉽게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기관의 법령이나 전문용어도 마찬가지다.
선스타인의 조언은 대부분 공공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에 쏠려 있다. 관료들이 분산된 정보에서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 들려준다. 무엇보다 결정적 정보는 그걸 이용하는 민간영역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비용과 편익에 관한 정보는 물론, 여러 규제 중 무엇이 작동하고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 뜻하지 않은 나쁜 결과나 좋은 결과에 대한 정보, 무엇이 너무 복잡하고 무엇이 단순한지에 관한 살아있는 정보들이다.
넛지의 중요성과 그 원리를 다시 한 번 풀어쓴 책이지만 그 단순화시키는 과정은 사실 만만치 않다. 정책과 규제의 비용과 편익을 분석할 때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공정성, 분배처럼 돈으로 따지기 어려운 가치들은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문제다. 또 복지정책과 관련, 다섯 살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정책과 80대 노인의 생명을 몇 달 더 연장하는 정책을 저울질해야 할 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편익과 비용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정책결정자들이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선스타인의 통찰은 특히 경제상황이 어려운 현 시점에 빛을 발한다.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편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스스로 선택설계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행동방식을 파악해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넛지’를 그 속에 슬쩍 끼워넣으면 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