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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최초의 화랑주이름 내건 박여숙화랑,30돌..“벅찬 여정이었죠”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 “1983년 가을, 서울 강남에 제 이름을 내걸고 화랑을 여니까 한 신문에서 제과명장 김충복(1934~1995)선생이 차린 ‘김충복과자점’과 묶어 기사를 내더라고요. ‘드디어 한국에도 개인 이름을 내건 전문업체가 생겼다’라고요. 그런데 저보다 조금 먼저 생긴 김충복과자점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전 아직 살아남았네요. 물론 여기까지 오도록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요.”

국내 갤러리로는 처음으로 화랑주 이름 석자를 붙여 출범한 박여숙화랑이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박여숙화랑은 이를 기념해 27일부터 내달 11일까지 ‘COLORFUL KOREA’전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박대표와 이태호 명지대 교수가 머리를 맞대고 기획한 것으로, 한국 현대회화의 대표작가 김환기, 김종학, 이대원과 사진작가 배병우, 염장 한광석의 작품을 ‘한국의 색’이란 주제로 아울렀다. 이 교수는 “다섯 작가의 작업을 통해 한국의 자연색, 전통색, 현대색의 공통된 흐름을 짚어봤다”고 밝혔다.

부산 출신의 박 대표는 홍익대 응용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김수근 선생이 만든 잡지 ‘공간’에 취재기자로 들어갔다. 당시 ‘공간’은 이흥우 씨가 편집장이었고, 유홍준 씨가 선배 기자로 한울타리에 있었다. 원서동의 공간 편집실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건축가 김원 등 쟁쟁한 작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작품을 발표할 곳이 너무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더라는 것. 이에 박여숙은 압구정동에 무작정 화랑을 냈다. 

자신의 청담동 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한 박여숙화랑 박여숙 대표.                                                                  [사진=김명섭 기자]

“첫 전시로 지금은 타계한 김점선 회화전을 열었지요. 당시 무명이었던 김점선의 그림은 무척 파격적이어서 화제였어요. 두 번째였던 이영학 조각전도 반응이 뜨거웠고요. 이후 김종학, 김원숙, 정창섭, 박서보, 윤형근, 이강소, 허달재, 전광영, 김강용, 박은선, 이이남, 이영섭, 서정국, 임만혁, 이헌정, 강지만 등의 전시를 개최했어요. 물론 김환기 이대원 김창열 선생의 작품도 취급했고요. 박여숙을 거쳐간 작가, 기백명은 넘을 걸요?”

그중에서도 김종학 화백과의 인연은 가장 잊을 수 없다. 서울대 미대 출신의 김 화백은 어두운 추상작업을 하다가 벽에 부딪혀 강원도의 내설악 골짜기로 도피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천변만화하는 설악산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김종학의 그림은 180도 바뀌었고, 박 대표가 전시를 제의해 원색의 풍경화를 선보이게 됐다.

30주년 기념 ‘COLORFUL KOREA’전에 출품된 김종학의 설악산 풍경                                                   [사진제공=박여숙화랑]

“당시만 해도 우리 미술계는 점잖은 추상화가 대세라 김 화백의 화려무쌍한 회화는 ‘너무 야단스럽다’고 비판이 많았어요. 유치하다고 쑤군거리는 이들도 있었고요. 그러나 제 눈엔 가장 진솔하고, 가장 원초적인 그림으로 다가왔지요. 좋은 기운도 넘쳤고요. 이후 김 화백은 우리 미술계 블루칩 작가가 되셨고, 그림값도 수십배 뛰었지요.”

박 대표는 해외로도 눈을 돌려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부부를 한국 최초로 초대해 작품전을 열었으며 리히텐슈타인, 패트릭 휴즈, 나이젤 홀 작품전 등 해외 전시도 꾸준히 개최했다. 뿐만 아니라 도예전문 갤러리인 우리그릇 려, 삼풍백화점 내 젊은 화랑인 삼풍갤러리, 제주 분점 등도 만들었다. 우리그릇 려는 동생이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30주년 기념 ‘COLORFUL KOREA’전에 출품된 김환기의 산월                          [사진제공=박여숙화랑]

미술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마당발이자 스타일리시한 갤러리스트로, 안목과 배짱도 남다른 그는 최근 3~4년간 극심한 시련을 겪었다. 미술시장이 활황이던 2007년에 100억원대 아트펀드를 만든 게 화근이었다. 1년도 채 안돼 미국발 금융위기로 그림값이 폭락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린 것.

“펀드를 통해 투자했던 그림값이 반토막이 나면서 (판로를 찾지못해) 고스란히 떠안다보니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어요. 대금 정산은 해야하고, 정말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날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실과는 달리) 부도설이 나돌고, 자금을 빼돌렸다는 루머까지 떠돌더라고요. 참 기가 막힌 순간이었지요. 어쩔 수 없이 제 오랜 꿈과 땀이 배어 있던 청담동 (새벽집 골목)의 옛 화랑과 아파트 등을 처분해 해결했죠. 투자자에게 배당도 해줬고요. 이젠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네요. 내공이 쌓였달까요? 올테면 와보라죠.” 

30주년 기념 ‘COLORFUL KOREA’전에 출품된 이대원의 농원                                                                 [사진제공=박여숙화랑]

강산이 세 번 변하도록 강남, 특히 청담동 일대를 지키고 있는 그는 역량있는 작가를 발굴해 스타 작가로 키우는 게 가장 보람차다고 했다. 그가 찾아낸 권기수, 구성수, 강강훈 등은 이제 국내 보다 해외에서 반향이 더 뜨겁다.
“천편일률적인 고가의 핸드백이나 보석 대신 독특한 그림에 빠져들 줄 아는 진정한 멋쟁이들이 우리 사회에도 좀 늘었으면 좋겠어요. 예술에 몰입하다 보면 뜻밖의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샘솟는 데 말이죠. 일단 우리 화랑은 문턱이 없으니 ‘눈 호사’하러 자주 찾아주세요.” 02)549-7575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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