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왕궁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 그 전모를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武王, 600~641년) 때 조성된 궁성(宮城)으로, 1989년부터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하나로 연차적인 발굴이 이루어져 왔다. 그동안 궁성과 관련된 성벽ㆍ전각ㆍ정원ㆍ후원ㆍ대형화장실ㆍ공방 터 등이 조사됐고 인장 기와ㆍ중국제 자기ㆍ연화문 수막새를 비롯한 중요 유물 5900여 점이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이 가운데후원(後苑) 공간의 총면적은 3만9100㎡(전체 면적의 1/3)으로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설치한 석렬 시설, 9부 능선을 따라 구릉을 감싸는 환수구(環水溝), 구릉 정상부에 조성된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또 다채로운 괴석(怪石)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물을 이용하여 경관을 조성했음을 파악했다. 환수구는 그 자체가 조경시설인 동시에 구릉 정상부에서 내려오는 물을 성 외곽으로 빼내는 수로(水路)의 역할도 담당했다.
이 후원은 백제 때 궁성의 일부로 조성된 이후, 궁성에서 사찰로 바뀌면서도 거의 원형 그대로 활용되다가, 환수구를 대체하는 곡수로(曲水路)와 구릉 정상부 방형 초석 건물지 등이 추가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후원의 사용 시기는 후삼국~고려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후원의 다채로운 괴석과 물을 통한 경관 조성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조경(造景)기술의 시원 형태로 백제 궁원(宮苑) 관련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일한 발굴 조사 성과로서 그 의의가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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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논란
사적 제408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백제 궁성(宮城) 후원의 전모가 확인했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전북 익산 왕궁면 왕궁리 유적에 대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백제 후원의 전모를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武王·600-641) 때 조성된 궁성이다. 1989년부터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하나로 연차적인 발굴이 이뤄져 왔다.
이전 조사에서는 궁성과 관련된 성벽, 전각(殿閣), 정원, 후원, 대형화장실, 공방(工房) 터 등이 발굴됐다. 이 과정에서 인장(印章) 기와, 중국제 자기, 연화문 수막새를 비롯한 중요 유물 5천900여 점이 출토되기도 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한 후원 공간의 총 면적은 3만9천100㎡(전체 면적의 3분의 1).
후원에는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설치한 석렬 시설, 9부 능선을 따라 구릉을 감싸는 환수구(環水溝), 구릉 정상부에 조성된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또 다채로운 괴석(怪石)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물을 이용해 경관을 조성했다. 환수구는 그 자체가 조경시설인 동시에 구릉 정상부에서 내려오는 물을 성 외곽으로 빼내는 수로(水路)의 역할도 담당했다.
연구소는 “이 후원은 백제 때 궁성의 일부로 조성된 이후 궁성에서 사찰로 바뀌면서도 거의 원형 그대로 활용되다가 환수구를 대체하는 곡수로(曲水路)와 구릉 정상부 방형 초석 건물지 등이 추가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후원의 사용 시기는 후삼국에서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후원의 다채로운 괴석과 물을 통한 경관 조성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조경(造景) 기술의 시원 형태이며, 또 백제 궁원(宮苑) 관련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일한 발굴 조사 성과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오는 28일 오전 11시에 익산 왕궁리 유적에 대한 2013년도 발굴조사 성과를 설명하고 현장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