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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공간 사옥
김수근(1931~ 1986)은 경제 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1970~80년대 한국인의 전통과 정서, 예술적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건축물에 담아낸 거장이다. 서울대 건축과를 중퇴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건축디자인으로 척박한 환경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단순한 건축가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문화예술을 진흥하는 데에도 적극 나서, 1977년 미국의 타임 지는 그를 ‘서울의 로렌초’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꽃피운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에 견준 것으로, 그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수근 건축물의 백미는 그가 만든 건축설계 및 디자인회사인 공간그룹의 사옥이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경궁 옆의 북촌한옥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공간 사옥은 1971년 설계해 1977년에 완공됐다. 검은색 벽돌 위에 담쟁이넝쿨이 잘 어우러진 이곳은 그의 아틀리에를 넘어 당시 한국 문화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산실이었다. 갤러리와 공연장을 갖춰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초연을 비롯해 공옥진의 병신춤, 백남준의 퍼포먼스 등 기념비적 공연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건설 경기 악화로 공간건축이 부도를 내면서 이 건축물이 끝내 경매에 부쳐지게 됐다. 문화예술계에선 이것이 부동산이 아니라 문화라며 보존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화재청도 실태조사를 거쳐 다음달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경매는 21일 이뤄진다. 최저 매각가격은 150억원이다. 이를 헐거나 개조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소중한 문화를 상실하게 된다. 경매 참여자나 문화재청 모두 그 가치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해준 문화부장/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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