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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정수일 소장,“‘실크로드 사전’은 문명교류학의 초석”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문명과 교류는 인류 미래의 비전이에요. 저는 이를 문명대안론이라 부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문제가 나왔는데 해결된 게 없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볼 때 공통 분모인 문명의 입장에서 인류의 문제를 접근하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명교류학을 정립하는 데 길을 열어가고 있는 정수일(80)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실크로드를 문명교류학적 시각에서 학문적으로 새롭게 규정한 방대한 규모의 ‘실크로드 사전’(창비)을 펴냈다.

1907개의 표제어와 8015개의 색인으로 구성된 1000여페이지에 달하는 이 사전은 규모와 내용면에서 세계 최대 규모다. 기존에 일본과 중국에서 나온 실크로드 사전이 있지만 지엽적이거나 부분적이어서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를 담아내지 못하는 미흡함이 지적돼 왔다. 이번에 정 소장이 펴낸 사전은 저자 자신이 지난 7년간 23차례 실크로드 현장을 답사하며 확인한 사실과 세계 3대 여행서를 역주하며 밝혀낸 것들을 포함,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인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로를 망라해 명실공히 결정판으로서의 모습을 갖췄다.

예를 들어 ‘실크로드’ 항목의 경우, 종래 장사꾼들의 무역행상길로 알려진 비단길이란 설명과 달리,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로 정의해 개념을 확장시켜 놓았다. 정 소장은 이번 사전 작업과 관련, “실크로드학의 토대를 마련한 첫 작업으로 최종적으로는 문명교류학을 확립하려는 목적에서 작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사전이 용어의 언어풀이에 그치는데 반해 이 사전은 실크로드 이론서를 방불할 정도로 직접 쓴 실크로드와 문명교류학의 기본 개념과 학문 연구를 위한 전거들로 상당 부분 채워져 있다.

특히 기존 실크로드 관련 연구가 실크로드 육로의 동쪽 끝을 중국의 시안(西安)으로 본 것과 달리 정 소장은 이론적 바탕 위에서 한반도 끝 경주로 확장했다. 4세기경 신라 경주에서는 이미 유리제품인 로만글라스가 다량 출토돼 당시 로마와의 교역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경주-로마 간 ‘유리의 길’을 통해 일찍부터 문명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자세히 밝혀 놓았다. 이 외에 한반도에 고대 동방기독교 전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물과 기록에 대한 소개, 논란이 있는 일본의 기마민족정복설, 중세 해상실크로들을 통한 도자기 교류 등 학계의 뜨거운 이슈도 폭넓게 정리해 놓았다. 


이 사전은 정 소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하던 1998년 4월부터 출소하기까지 2년6개월 동안 감옥에서 절반이 쓰였다. 편지지 앞뒷면에 깨알처럼 작성한 표제어 974항목의 원고는 출소 후 바로 펴낸 ‘실크로드학’과 ‘고대문명교류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감방에서 구한 벽지 뒷면에 실크로드 지도를 완성하기도 했다.

정 소장은 한국의 문명교류사, 문명교류사전 등 모두 22권의 관련 저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 책들을 써내고 나면 문명교류학이 인문학의 새로운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예요. 한국을 문명교류학의 메카로 만들고 싶습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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