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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헛헛함이란…‘웃픈’ 연극 ‘바냐아저씨’
러시아 문호 안톤 체홉의 희곡 ‘바냐아저씨’는 영화로도 여러 편이 제작됐다. 1897년 출간된 희곡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폐부를 찌르고 휑한 구멍을 내어 놓는다. 지나간 과거는 빛나 보이고 현재는 무섭도록 허망한 시간의 본질, 세상에 속은 느낌이 들어도 변함 없이 오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야하는 인생의 무게 등 원작의 주제가 1세기가 지나도 여전한 울림을 전하기 때문이다. 부제는 ‘전원 생활의 정경’이다. 권태로운 시골에서 벌어진 한바탕 소동을 체홉은 한발짝 떨어져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26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이성열 연출의 ‘바냐 아저씨’는 이런 원작의 훌륭함 덕에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47세 노총각 이반이 주인공이다. 바냐 아저씨로 불리는 그는 죽은 누이동생의 남편인 세례브랴꼬프 교수를 위해 누이동생이 낳은 딸 소냐와 함께 그의 영지를 관리하고 있다. 세례브랴꼬프가 은퇴해 젊은 부인 옐레나와 함께 시골 영지로 내려오면서 바냐의 규칙적 일상에 파문이 인다. 평생 매부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를 위해 황소처럼 일해 온 바냐는 냉혹하고 불친절하며 알고보니 실력도 별로 없는 매부에게 속은 느낌을 받는다. 바냐는 젊고 우아한 옐레나를 향한 연정을 키우면서 자기비하와 자기경멸에 빠진다. 한편 소냐는 젊고 활기찬 의사 아스뜨로프를 6년째 짝사랑 중이다. 그런데 이 의사는 사실 옐레나에 빠져있고, 옐레나 역시 그의 유혹에 넘어가려한다. 아스뜨로프와 옐레나의 밀애를 목격한 바냐는 충격에 휩싸여 총을 찾고, 마침 영지를 팔고자하는 매부에게 배신감이 들어 총구를 겨누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통 때처럼 팔토시를 끼고 탁자에 앉은 바냐에게 소냐가 건네는 위로의 말이 주제를 응축한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야죠.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내고, 쉬지않고 일해요. 우리는 쉬게 될 거에요. 천사의 소리를 듣게 될 거에요. (중략)나는 믿어요, 믿어요.”

“이 작품을 위해 10년을 기다렸다”는 이 연출은 “결국 쓸쓸해지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 싶다. 아직 공연 초반인 탓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롭지 못한게 아쉽다. 바냐의 어머니 역을 한 고령의 백성희(88) 여사는 단호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초반에 대사를 까먹은 듯 했다. 2년만에 서울 무대에 다시 선 바냐역의 이상직(47) 배우의 연기는 관객에게 인물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좀 부족해보였다. 공연은 다음달 24일까지 이어진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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