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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작대기서 ‘ㅂㄱㅎ’ 까지…표심잡는 디자인전쟁
1950년대부터 시골은 유권자의 문맹률이 70%를 넘었다. 그래서 선거벽보에는 아라비아 숫자 대신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은 작대기가 기호를 대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올 뿐인데, 1956년 대통령 선거 때는 야간통행금지 시간을 이용해 신익희 민주당 후보 ‘작대기 두 개’에 하나를 더 그어 이승만 후보 기호로 변조하고 장면 후보의 ‘작대기 하나’에 한 개를 더 그어 이기붕 후보 기호로 변조하는 등 기호모략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보통교육을 받지 못해 무학자가 많던 196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일명 ‘작대기 선거’는 선거판의 중요한 열쇠였다. 당시만 해도 선거 벽보나 홍보책자의 디자인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디자인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벽보가 중국의 문화대혁명기에 확산된 벽신문(壁新聞) 형태로 일종의 대중매체인 대자보(大字報) 형태를 띠면서다. 인물과 슬로건을 함께 강조해 디자인 한 포스터는 거리유세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후보의 신상을 알리는 데 가장 강력한 홍보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인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포스터에는 디자인적인 요소보다 사진과 배경, 슬로건, 글자체 등을 배치해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주목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편이었다. 14대 대통령선거 때 당시 김영삼 대선후보 벽보에는 두꺼운 고딕체의 ‘新한국 창조!’ 문구와 더불어 정면을 응시한 김영삼 대선 후보의 모습을 담았고, 김대중 대선후보 벽보에는 ‘이번에는 바꿉시다’는 궁서체 문구와 함께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김대중 후보가 우측을 바라보는 사진으로 디자인됐다.

한 홍보정치컨설팅 관계자는 “당시 포스터 디자인이 감각있고 세련된 퀄리티로 맞출 줄 몰라서가 아니라 타깃층에 맞춰 디자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을 갖게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선거전략 마케팅 분석에 따르면 홍보물은 50대 중학교 졸업 수준의 여성이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단편적이며 직설적인 디자인 콘셉트가 효과가 크다”는 말을 덧붙였다.

 1952년 3대 부통령 선거 벽보.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편 대부분의 포스터 사진 촬영이 실내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다 보니 정치홍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90년대 중반 선거 홍보물의 사진이 이른바 ‘영정사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국민들이 요구하는 가치들을 반영한 이미지를 강조하니 천편일률적인 디자인과 사진의 표정들이 나왔다는 것. 이 때문에 특히 지방 의회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은 포스터를 보면서 “그 후보가 그 후보 같다”며 빈정대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포스터 사진 촬영 방식도 진화를 거듭했다. 한 정치컨설팅 관계자는 “과거에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는 게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야외 촬영은 물론 후보의 감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홍보물 디자인이 대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8대 대선에서 ‘사람이 먼저다’ 문구와 함께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흑백 사진이 포스터에 담겼고, 박근혜 대선후보는 60초짜리 TV 광고에서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 겪었던 신촌 ‘커터칼 테러’를 소재로 삼고 상처가 난 얼굴을 클로즈업, 테러로 인해 남은 흉터와 당시 상황을 교차 편집해 내보냈다. 두 후보 모두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해 본인을 어필한 것.

한편 유력 정치인들에게 붙여지는 영문 머리글자 대신 박 대통령의 한글 초성인 ‘ㅂㄱㅎ’ P.I(Presidential Identity)는 진지한 표정 탓에 다소 딱딱해 보이는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디자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의 말풍선 안에 ‘ㅂㄱㅎ’과 함께 ‘스마일’을 한데 모아 웃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아이콘은 선거 기간 내내 박 대통령의 홍보물에 실려 있었다.

이정아 기자/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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