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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디자인은 ' □ ' 다
디자인은 이제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은 논리다. 그리고 과학이자, 비즈니스다. 아니, 우리의 삶을 바꾸는 모든 게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영역과 가치는 이렇듯 날로 무궁무진해지고 있다.

건축가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승효상 씨는 지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으며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노자의 ’도덕경‘ 첫 머리의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도라고 칭하는 게 모두 도가 아니다)’를 차용해 디자인이 그저 예쁘고, 보기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세상을 바꿔놓는 모든 것이라고 주창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디자인이란 것.

바야흐로 디자인의 시대다.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본질적인 영혼’이라고 일갈했듯 21세기 디자인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바꾸는 모든 움직임을 통칭한다.

▶서비스, 배려도 디자인..병원동선도 디자이너의 몫?= 디자인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따라서 21세기 디자인은 ‘서비스’다.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영감을 얻기위해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위해 시각과 태도를 바꾸고 있다.

디자인기업 사이픽스는 지난해 지식경제부·한국디자인진흥원의 의뢰를 받아 2차 의료기관 중 정형외과 동선 등을 바꾸는 ‘서비스 디자인’작업을 시행했다. 무형의 의료서비스를 시각화·실제화해 고객이 더 높은 가치를 경험케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처럼 의료·에너지.환경 등 공공분야를 바꿔놓는 ‘사회문제 해결 디자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이픽스 팀은 정형외과 환자들의 비슷한 증상과 주의사항을 유형화해 이를 그래프, 표로 제작했다. 이로써 무릎과 허리 등이 불편했던 환자들은 좀더 짧은 동선에 따라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도 이제 디자이너들의 몫이 됐다.

▶디자인, 무조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거늘= 디자인하면 무조건 예쁘고, 산뜻한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때로는 녹스는 것도, 죽어가는 것도 디자인이다. 또 디자인은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히트곡 ‘강남스타일’이 수록된 싸이의 음반 ’육갑’을 디자인한 YG엔터테인먼트의 아트디렉터 장성은 팀장은 일부러 싼티, 날티가 나도록 디자인했다. 배가 불룩나온 오동통한 B급 뮤지션 싸이의 정체성을 살려, 토실토실한 인어에 싸이의 얼굴을 접목시켰다. 단 B급이지만, 톡 쏘는 위트를 바탕에 깐 것이 포인트다.

장 팀장은 빅뱅의 미니 5집 ‘얼라이브(ALIVE)’의 은빛 스틸케이스가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녹이 슬도록 디자인했다. 공백기 이후 재기를 선언한 빅뱅의 앨범이어서 일부러 부식방지 가공을 안한 것. 가수의 정체성이야말로 디자인의 결정적 요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가수마다 서로 다른 이미지를 일관되게 밀고나갈 때 디자인은 시너지를 창출한다고 장 팀장은 강조한다. 


▶좋은 디자인은 ‘마이너스’= 현대의 디자인에서는 ‘더하기 보다 ‘빼기’가 중요하다. 곧 ’마이너스 디자인‘이 대세다. 단순미는 현대 멋장이들의 고상한 취향을 대변한다. 실제로 장식이 적으려면 기술력이 뛰어나야 가능하다.

이탈리아의 패션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한국을 찾았을 때 “디자인에서 무엇을 덧붙이는 것 보다, 덜어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꾸 덧붙이다보면 더 나빠진다. 본질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더구나 애플의 아이팟, 아이폰 이후 우리 주변의 많은 제품들은 디자인이 더욱 더 단순화되고 있다.

▶‘목적이 이끄는 디자인’= 전체 기획을 관통하며 디자인을 넓게 보는 게 중요하다. CJ그룹의 브랜드전략 고문으로 활동 중인 노희영 브랜드 컨셉터는 “디자이너는 앞으로 디테일한 것에서부터 브랜드 전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네이버의 녹색 검색창을 디자인한 조수용 JOH 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디자인이야말로 비즈니스’라며, 디자이너가 마케팅까지 한다는 게 얼마 전까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 고정관념을 바꿔야 새로운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디자이너들이 관심을 두어야 할 영역으로 ‘의식주+정’을 꼽았다. 여기서 ‘정’은 정보(情報)를 가리킨다. 조 대표는 좋은 디자인은 그 비즈니스(또는 브랜드)가 존재하기 위한 철학을 잘 드러낸 디자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미술과 디자인 사이= 디자인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널려 있다. 가전제품ㆍ주방용품ㆍ가구ㆍ조명ㆍ자동차 등등. 이 가운데 특별히 압도적으로 빼어난 디자인은 간혹 미술관에 초대되곤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디자인이 단번에 예술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순수함이 미술의 본령이라면, 일상의 유용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데 봉사하는 게 디자인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그동안 하위장르로 평가돼왔다. 그러나 미술관 전문가들은 일상의 사물에서도 순수한 미감을 찾아내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1934년 모더니즘 디자인전을 열며, 비행기 프로펠러, 배의 모터, 기계 속 거대한 볼 베어링, 화학실험용 플라스크 등을 전시했다. 이것들은 원래 있던 기물이나 공간에서 빠져나와 그 선과 형태,질감, 비례를 뽐낸바 있다. 그리곤 마침내 일상의 쓸모있는 물건이 아닌, 찬미와 경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디자인이 아트가 되려면 ’기능‘과 ’꾸밈‘이라는 실질적인 필요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럴 경우 우수한 디자인 제품은, 예술의 영역인 ‘오브제’로 승화하며 미술관의 우아한 조명 아래 놓이게 된다. 디자인과 미술은 이처럼 그 경계가 날로 모호해지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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